목소리 크면 무조건 善인가 - 박효종
	2003-03-06
목소리 크면 무조건 善인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인선 작업이 전례없이 난항을 겪고 있다. 몇 번에 걸쳐 일부 시민단체들이 거론된 인사에 대해 개혁성을 문제삼고 격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참여 민주주의의 일단이기도 하다. 노무현정부도 스스로를 참여정부로 내세우며 장관후보들을 인터넷을 통해 추천받았을 정도로 참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참여정치’에 이어 ‘참여교육’‘참여경제’까지 활성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참여정치가 이뤄진다고 해서 절대적 선(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참여는 ‘양’만으로 가늠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질’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목소리 작은 사람을 압도하고자 고함을 지르는 소리의 정치. “울어야 젖 준다”는 속담을 상기하며 악을 쓰며 우는 정치, 언변 좋은 소수의 사람이 침묵하는 다수를 윽박지르며 기죽이는 압박정치,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인터넷으로 인신 공격과 상소리까지 마다하지 않는 욕설정치는 참여민주주의의 부실한 모습일지언정,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정치참여는 민주사회에서 중차대한 행위다. 참여를 통해 공공정책이 결정되고 또 사회 전반에 걸쳐 구속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참여가 일정한 규범과 원칙 안에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의 범주로 전락할 가능성이 짙다는 사실이다. 사실 ‘열린 정치’ 혹은 참여정치라고 할 때, 사회의 온갖 목소리가 터져 나오게 된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나 할까. 거기에는 절제된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 또는 질풍노도와 같은 격정들도 다수 섞여 있게 마련이다. 혹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면 무책임한 목소리들이 여론의 이름으로 등장할 가능성조차 있다. 따라서 이 목소리들은 국정에 반영되기 전에 반드시 한두번쯤 걸러져야 한다. 또한 그것을 거르는 것이 대의 기구의 몫이고 입헌 민주주의 정신이기도 하다.그러한 여과 장치없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집단들에 의해 정치가 좌지우지되면, 2500년 전 플라톤이 우려한 것처럼 사이비 선장이 배를 운항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사이비 선장이 지휘하는 배라면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각종 시민단체들이 공익단체로 자임해 왔고, 이익단체와는 다른 특권적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공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정부도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정책을 추진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 경우 도덕성이 확보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익을 표방하고 개혁을 외친다고 해서 그 주장 자체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이념이 혼재하는 ‘경쟁적 다원사회’가 되었다. 따라서 진보뿐만 아니라 보수도 존재하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경쟁하고 있다. 또 이들이 표방하는 가치들은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시장개혁이라고 해도 기업 규제 강화를 개혁으로 생각하는 규제주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정부 규제 혁파를 개혁으로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도 있다. 국가 개입의 확대를 공익으로 간주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개입의 축소를 공익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공공의 이익이라고 해도 사람이나 집단의 성향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면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는 옳다고 생각하는 개혁 대안이라도, 다른 입장에서 보면 아집이나 편견으로 보이는 것도 부지기수다. 결국 개혁의 방향과 방법론에 대해서 합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시민단체라도 개혁이나 공익을 독점한 듯이 처신해서는 곤란하다. 공익을 소리 높이 외친다고 해서 도덕성을 확보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데 무오류성을 전제하기보다는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며 겸허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참여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 실험의 성공 여부는 구성원들이 독선과 아집 대신에 절제와 관용의 태도를 갖고,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참여민주주의가 활성화되려면 목소리가 큰 몇몇 시민단체들의 의견만이 반영돼서는 곤란하며, 작지만 신중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보통 시민들의 의견도 경청돼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이 우려된다면 나 혼자만의 기우일까.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문화일보 2003. 3. 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