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대학이 없는 이유 - 정구현 | |
2003-03-03 | |
세계적 대학이 없는 이유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 경제가 고도 성장하면서 가장 큰 혜택을 본 집단은 홍콩 대만 싱가포르 출신 고급 관리자 인력이라고 한다. 중국어와 영어를 잘하면서 높은 수준의 공학이나 경영학 교육을 받은 전문인력은 요즈음 미국인들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가 잘사는 길은 이러한 고급 인력을 많이 배출해 세계 로 뻗어 나가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교육시스템은 이러 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교육시장은 현재 평준화를 지향하는 공교육섹터와 이익을 지향 하는 사교육섹터로 이원화되어 있다. 공교육섹터 그러니까 학교는 지난 30년 동안 보편성만을 강조하면서 교육의 질 저하와 많은 학생의 소외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엄청난 돈을 학원 과외 학습지 등 사교육 시장에 쏟아붓고 있으나 원하는 수준의 교육은 받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교육섹터는 지식장사만 했지 사람을 키우고 지도자를 키우는 일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불만스러운 소비자들은 자식들을 어려서부터 외국에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조기 유학생은 외 국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국내 환경에도 익숙하지 못한 떠돌이 가 되었다. 우리 교육문제가 풀리기 어려운 이유는 교육에서만은 절대평등을 원 하는 국민정서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승용차는 500만원짜리와 2억원짜 리가 나란히 길을 달려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교육은 모든 국민이 50 0만원짜리만 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 등록금을 보면 거의 모든 대학이 1년에 500만원 안팎의 등록금을 받고 있고 따라서 교육의 질도 거의 모두 낮은 수준에 머물 고 있다.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10년 이내에 능력에 따라 10배 이상 급여 차이가 나타날 텐데 대학에서는 모두 똑같이 저질 교육을 받겠다고 매년 새 학기가 되면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교육 목표는 국민에게 일정 수준의 보편적인 교육 기회를 주는 동시 에 한편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수월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보편성과 수월성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방 법은 시장을 나누는 수밖에 없다. 설렁탕과 고급 한정식을 한 식당에서 모두 공급할 수는 없듯이 보편 적인 교육과 특수한 교육이 한 학교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 . 현재 이른바 공교육시장에는 사실상 두 개의 다른 섹터가 존재한다. 하나는 정부가 직접 하는 관(官)교육시장이고 또 하나는 민간 비영리 조직(NPO)이 참여하고 있는 사립학교다. 현재는 정부가 사립학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관립 학교와 똑같이 규제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제는 관교육기관과 민간공교육기관을 나누어 전자는 보편교육을, 후자는 수월성과 특수교육을 맡도록 해야 한다. 민간 공교육기관이 무엇을 할지는 그들에게 자율권을 주면 된다. 학생 선발을 자유롭게 하도록 해주고 등록금을 마음대로 받게 하고 교육내용에도 자율권을 주면 된다. 교육부에서는 일부 사립학교의 비리를 걱정할 것이다. 이 문제는 사 립학교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고 지배구조를 강화함으로써 해결할 일이지 교육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학에는 이사회 말고도 교수와 학생 동창 등 여러 이해 당사자가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얼마든지 경영을 해 나갈 수 있다. 기업이 망하듯이 비영리조직도 잘못될 수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가 나쁜 사립학교는 장기적으로는 도태될 것이다. 민간공교육섹터가 제대로 돌아가면 현재 국민이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는 사교육섹터는 줄어들 것이다. 현재 사교육섹터에 들어가는 돈 중 극히 일부만 민간공교육기관에 투입된다면 우리 교육의 질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등록금을 두 배로만 올려도 그 효과는 상당히 클 것이 며 여기에 기여입학과 같은 제도가 도입된다면 우리나라에도 10년 안 에 세계적인 대학이 여러 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하는 나라에서 모든 국민에게 똑 같 은 저질 교육을 강요하면서 한편으로는 수십조 원을 과외와 학원에 쏟아붓는 난센스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보편적 교육은 관교육섹터가, 수월성과 특수성은 민간공교육섹터가 맡도록 하면 사교육시장은 차츰 축소될 것이다. 교육에 민간 비영리 공익법인이 설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정구현 (연세대 경영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매일경제 2003. 3. 3 시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