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6자회담 복귀 이외에 대안 없다 - 유호열
	2009-08-10
北, 6자회담 복귀 이외에 대안 없다 북한에서 12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2명의 미국 여기자가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으로 사면돼 무사히 석방됐다. 핵(核)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제재의 핵심 주역인 미국의 전직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인 것을 놓고 북한의 협상력을 높이 평가하거나 미국의 굴욕이라는 일부 비판도 있으나 이는 적절한 평가라 할 수 없다. 여기자들의 사면 석방과 관련해 북한이 주장하듯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가 전달됐거나 북·미 간 암묵적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의혹도 현재로선 아무런 근거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여기자들의 증언대로 단 30초 동안 북한 땅을 허가없이 밟았다가 자칫 12년을 복역할 수도 있었을 참담한 상황을 조기에 종료한 것일 뿐 북미관계나 북한의 대외적 환경은 클린턴 방북 후에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정일은 클린턴의 면담 과정에서 북미관계 개선 의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9년 전의 북·미 코뮈니케와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을 떠올렸거나 미국에 대해 핵과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모든 현안을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단번에 해결하자고 제의했을 수도 있다. 북한 당국이 즉각 거부했던 미국의 패키지 구상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관심을 표명하고 진의 여부를 타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무와 역할로 볼 때 공은 여전히 북한 진영에 머물러 있고 북미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기 위해서는 북한의 근본적인 정책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미국 정부의 초기 반응 역시 북한 문제의 핵심은 핵폐기에 따른 한반도 비핵화에 있으며 북·미 대화는 6자회담의 틀 안에서만 이뤄질 것이란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어 결국 북한의 결단만이 관건임이 재확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북한은 클린턴의 방북을 대내 선전용으로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과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운의 치적으로 치켜세우며 선군정치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할 것이다. 김정일의 건강 악화설을 불식시키고 그의 건재함을 과시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질 수도 있다. 반면 전직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북한으로서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숨가쁘게 몰아치던 비타협적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철회할 수 있는 명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벼랑끝 기로에 섰던 북한이 문제 해결의 출구를 북·미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면 6자회담의 복귀를 선언함으로써 강성대국 건설이나 150일 전투의 미망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면 외부 적대세력의 침략을 억제할 것으로 믿고 있으나, 무력으로 북한 정권이나 체제를 붕괴시킬 의도나 계획을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나 미국을 비롯해 주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체제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핵무기 보유량을 늘려나가겠다고 하면 결국 실체도 없는 적대 세력의 가상 위협에 과잉 대응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체제 생존의 목표는 달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메시지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북한은 1인독재 체제로서 정책결정 과정에 장단점이 있다. 지도자가 결심하면 어느 때라도 어떠한 결정도 이행이 가능하다. 134일 동안 현대아산 직원을 무단 억류하고 열흘 동안이나 우리 어선을 조사했으면 할 만큼 했다. 북한 체제의 생존과 2300만 주민을 책임진 최고지도자로서 국제사회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신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 클린턴이 마련해 준 기회를 또다시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유호열 (고려대교수·북한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9. 8.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