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예산심의 쓰라린 기억 - 안종범
	2009-08-05
작년 예산심의 쓰라린 기억 "금융위기 극복 중대 시기…예산 중복ㆍ낭비 제거를 정치인들이 제대로 하나 두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올해 휴가는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글로벌 경제위기, 북한 핵문제, 여야 간 극한 대치, 쌍용차 파업사태 등으로 홀가분하게 다녀와야 할 휴가가 아니기에 그렇다. 이번 휴가가 끝나고 나면 수많은 쟁점법안이 대기하고 있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 또한 더욱 무거울 것이다. 어차피 정치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우리 국민들이라 웬만한 소동에 둔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기능인 예산 심의에 대해서만은 무관심하면 안 된다. 지난해 예산 심의 당시 성장률 예측치를 놓고 여야 간 극렬하게 공방을 벌이다 정작 예산 심의는 졸속으로 하고 말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엉망으로 짠 예산은 올해 4월에 사상 최대 규모 추경을 편성하게 만들었다.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는 정부의 2010년 예산안이 상정되면 이번만큼은 분명히 달라지도록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내년 예산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로 투입한 재정자금으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었기에 이를 회복하면서 동시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예산을 짜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가 시작한 대형 국책사업에 이명박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4대강 사업, 녹색성장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기에 이를 제대로 심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켜봐야 할 대목은 이런 것들이다. 나라 살림 지킴이 4단계 수칙이다. 첫째,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짜는 데 필수는 씀씀이를 줄이는 것인데, 과연 우리 국회의원들이 기존 예산사업들에서 낭비와 중복을 얼마나 찾아내는지 지켜봐야 한다. 우리 예산은 부처별로 만들고 심의하기 때문에 언제나 중복 문제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부처 간 중복과 낭비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둘째, 경제를 살리고 서민을 보호하는 각종 사업들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효성을 점검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국회의원들은 복지, 중소기업, 농업, 교육 부문 예산을 놓고 실효성 운운하면서 예산을 깎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이제는 이러한 부문에 대한 예산조차도 전달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실효성이 담보되지 못할 때는 과감히 축소조정을 해야만 한다. 셋째, 불합리한 예산제도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국가재정법 아래에서는 5년간 중기재정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매년 예산 편성에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어느 정치인도, 어느 언론도 예산 심의 시 중기재정계획을 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넷째, 이러한 3단계까지 거치고 나면 부문별 예산 배분을 대내외 환경 변화 그리고 시대적 변화에 얼마나 적절히 조정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재정을 갖고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내려는 습관이 붙어버렸다. SOC, 중소기업 등 경제 부문 예산 비중이 지나치게 커져서 G7 국가 평균에 비해 두 배에 달한다. 이제는 경제 부문 예산 비중을 줄이고 그 재원을 우선순위가 높은 다른 부문에 돌려야 한다. 4대강 정비사업과 녹색사업 모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조기에 성과를 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또한 신중해야 한다. 본사업과 직접연계사업을 합해서 2012년까지 22조2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은 너무 조급하다.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대규모 재정자금을 투입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토목사업을 통한 고용 창출 효과나 성장 효과가 예전과 달리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도 성급한 사업 추진은 재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성급함은 녹색성장사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예산 심의는 전 국민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성실하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매일경제 2009. 8. 5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