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대북 송금 해명 이후 - 제성호
	2003-02-17
대통령의 대북 송금 해명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마침내 대북 송금문제에 관해 직접 해명하고 국민 앞에 사과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을 밝혔다. 퇴임을 앞둔 노 정치가가 가장 애착을 갖고 추진했던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2주일 전 김 대통령이 국익을 이유로 대북 송금문제가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가, 여론에 떠밀려 할 수 없이 송금의 불법성을 자인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좀더 일찍 대북 송금 사실을 시인하고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지 안타깝게 여겨진다. 대통령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악화돼 온 국민여론이 당장 진정될지, 또 야당이 특검 수사나 국정조사 추진을 즉각 중단할지는 의문이다. 일방적인 '해명'과 철저한 '진상규명'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이 어려운 결단을 내려 대국민 사과를 한만큼, 야당이 더 이상의 정치공세를 하지 말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파문이 수습의 길로 가닥을 잡을지 여부는 정부와 여당이 앞으로 어떤 후속조치를 취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하겠다. 사실 햇볕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추진절차와 방법론(실정법 저촉, 퍼주기론 등) 뿐 아니라, 현 집권세력이 반대파를 냉전수구세력, 반통일분자로 매도하면서 대북정책을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일방적으로 추진해 온 데 그 원인이 있다. 그 동안 범여권이 균형잡힌 사고와 원칙론에 입각해서 햇볕정책을 비판해 온 사람들을 반통일세력으로 치부해 왔기에 이른바 보수세력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대통령의 고해성사만으로 쉽게 어루만져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 여당은 국회에서의 정치적 해결론을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그간 남북관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햇볕정책을 무조건 지지했다는 점과 더불어 정부 독주의 대북정책 추진(특히 밀실주의 정책결정의 관행), 송금의혹과 관련된 거짓말과 부인, 그리고 야당에 대한 반통일세력 규정에 관해 추가적으로 사과하고, 앞으로는 여 · 야간의 합의 하에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결연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그래야 대다수 국민들이 정부 · 여당의 사과를 받아들일 것이고, 또 이번 파문을 왜곡된 남북교류협력질서와 편향된 남북관계를 올바로 정립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대통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대북 송금과 관련된 의혹 중 미진한 부분은 앞으로 국정조사와 특검 등을 통해 보다 철저하게 규명하고,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한다. 다만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고 어렵게 쌓아올린 남북관계의 성과를 단번에 허물어뜨릴 수 있는 대북 정보에 대해서는 전면공개보다는 여 · 야가 정치적인 합의를 통해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지금은 북한 핵문제로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미국의 한 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의 투자전망을 2등급이나 낮추는 등 향후 우리 경제를 낙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때 여 · 야가 대북 송금문제에 관한 정쟁에만 매달릴 경우 국민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햇볕정책 추진상의 과오가 아니라, 10일 후 출범할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쏠리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기본적으로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서는 대규모의 대북 뒷거래 관행도 이어받겠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앞으로 차기 정부는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보다 당당한 대북정책을 펴나가길 바란다. 대통령, 청와대, 국정원으로 이어지는 비선(秘線) 라인에서 탈피하여 대북정책 추진구조를 국회와 국민 중심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북 뒷거래 유혹은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한다. 북한에 대규모 지원성의 경제협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국회의 동의를 얻어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국책은행에 대해 대출 압력을 넣거나 국가기관이 돈 세탁 과정에 개입하는 방식은 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된다. 대북정책이 투명성과 국민적 합의를 확보할 때 그 정책이 도덕성과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 강력한 추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 새 정부는 가시적인 성과 못지않게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을 중시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주길 기대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매일경제 2003. 2. 15 테마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