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국제대회 수상과 향후 과제 - 조희문
	2009-05-30
'박쥐'의 국제대회 수상과 향후 과제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 ‘박쥐’가 칸국제영화제에서 5월24일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데 이어 같은 감독의 영화가 유수한 국제영화제에서 거듭 수상한 것은 쉽지 않은 성과다.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평가받은 것인데다, 한국영화가 세계 영화계의 주목과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 기대를 걸었던 제작자·배급사·극장들은 아쉬워한다. 믿었던 주전 선수가 제 역할을 못한 듯한 반응이다.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칸국제영화제는 베니스,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지만 대표성과 권위 측면에서는 앞선다. 1932년 이탈리아 정부가 베니스국제영화제를 개최하자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 회복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프랑스 정부가 앞장서 만든 영화제다. 1939년, 첫 개최를 계획했지만 유럽 정세 변화로 표류하다가 1946년에야 개막식을 치렀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이 미국영화의 세계적 홍보 이벤트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대안적 입장에서, 예술성과 실험성을 앞세운 영화들을 발굴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주요 섹션인 경쟁부문을 비롯해 비경쟁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황금카메라상, 단편부문 황금종려상, 단편부문 심사위원상, 시네파운데이션 등의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는데 최소한 영화제 시작 전 1년 이내에 만든 영화여야 하고, 다른 영화제나 행사에서 공개된 적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 다른 영화제에 선보인 영화는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때로는 특정한 감독의 영화를 초청하기 위해 완성도 되지 않은 영화를 경쟁부문 후보에 넣어 분초를 다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한국은 ‘물레야 물레야’(이두용 감독, 1984)로 특별부문상을 수상했고,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임권택 감독, 1999)이 경쟁부문에 참가했다. 같은 해 단편부문에서 송일곤 감독의 ‘소풍’이 심사위원상을 받았으며, 2002년에는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배우 전도연은 ‘밀양’으로 2007년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먼 상대라고 여기던 때와 비교하면 한국영화의 수상은 대약진이다. 그러나 수상이 빈번할수록 감동과 흥분은 줄어들고, 비평과 흥행이 따로 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영화제 수상을 너무 과장하는 것은 아니냐는 회의가 나온다. 상으로 영화의 평가를 대신하려는 것은, 비싼 제작비를 공허한 찬사를 위해 쏟아붓는 것이라는 비난도 고개를 든다. 노력의 결과로 받는 상이라면 축하할 일이지만, 수상을 겨냥하며 영화제의 기준에 맞추는 영화를 만든다면 관객과 함께하는 영화, 관객을 위한 영화 대신 자신을 위한 영화, 투자자들을 실망시키는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임권택 감독이나 이창동 감독도 상을 받았지만 수상 결과가 특별히 상영에 도움을 준 증거를 찾기 어렵다. 임권택 감독이 ‘천년학’을 만들 때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곤란을 겪은 사례는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영화계와 공유할 수 있는 에너지로 바뀌기 어렵다는 냉혹한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개봉전 ‘박쥐’에 대한 영화계 안팎의 기대는 컸지만 관객의 호응은 냉랭하다. 힘든 분위기를 바꾸는 데 기여하기를 바랐던 영화계도 아쉬워한다. 상을 받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관객과 영화계가 함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영화와 관객, 감독과 제작자가 함께 만족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영화가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조희문 (인하대 교수·영화학 / 바른사회 문화예술포럼 회장) 출처 - 문화일보 2009. 5. 3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