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가로 경제` 틀 짜라 - 이종훈
	2003-01-15
동북아 `가로 경제` 틀 짜라 인수위원회가 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함으로써 노무현 새 정부의 21세기 구상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역대 정권의 국정과제보다도 국제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의 건설이라고 하는 국정과제를 우선시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정치·경제적 좌표와 위상을 분명히 설정했다는 신선감을 주고 있다. 그러나 과연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의 틀을 어떤 방법으로 짤 것이며,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한다. 물론 남북한의 화해 협력을 디딤돌로 한반도의 평화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민족의 소망이며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를 건설하는 데 충분한 수단과 조건이 될 수는 없다. 그 수단과 방법으로는 남북문제보다도 동서문제, 즉 한·중·일 3국간 지역협력체의 틀을 새로 짜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 출발은 과거 50여년 간 계속돼 온 한국 경제의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 선진국(미국)·중진국(일본)·후진국(한국)이라고 하는 미·일 의존적인 국별 국제 분업의 틀 속에서 근대화를 이룩해왔던 만큼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사회·문화·의식 등 모든 면에서 미·일에 경사된 주변국의 세계화 속에서 불균형 성장으로 버텨 왔다. 그러나 21세기의 벽두부터 우리의 세계 제1·2위 수출시장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비중이 29.7%로 급격히 떨어진 반면에 중국과 대만이 24.8%를 차지하는 등 국제 환경의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미·일의 동남풍에 길들어 온 한국 경제가 이제는 중국의 서북풍을 맞이하여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이를 먼저 치료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종래의 미·일 의존적인 국제분업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는 새로운 한·중·일 간의 지역별 3각 국제분업의 틀을 적극적으로 짜나가야 한다. 즉, 기존의 한·미·일간 의존적인 세로경제(종적 경제) 관계를 개선하고 새로운 한·중·일 간의 대등한 가로경제(횡적 경제) 관계의 틀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이를 서로 접목시켜야만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로 자리잡을 수 있다. 수입은 일본에서 제일 많이 한 결과로 14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데 비해 수출은 오히려 중국에 제일 많이 하여 5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일, 한·중간의 엇갈린 무역 불균형을 방치한 채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우리는 세계 제일의 공장과 투자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수출과 투자를 늘리면 늘릴수록 일본에서 더 많은 부품과 자본재를 수입해야 하는 대중 수출 의존도와 대일 수입 의존도의 밀접한 함수관계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중·일간 무역 규모가 확대되고 동북아지역 무역의 긴밀도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 일본 기술 경쟁력은 떨어지고,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은 계속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동북아의 경제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면 최대 수입 국가인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면서 최대 수출 국가인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혁신적인 산업전략과 무역전략을 먼저 세워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전략은 산업구조의 고도화보다는 각 산업 자체를 소프트화(기술화·정보화·지식화)시킬 수 있는 산업의 0.5차화 플러스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한·중·일 3국 차원에서 장기적인 공동 투자전략을 세워 합리적인 산업 배치를 통해 산업 공동화를 방지해야 한다. 무역전략은 한·중·일 3국이 세계 수출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철강·자동차·섬유·조선 등에 대해 공동 시장조사, 공동 마케팅 등 수출협력기구를 설립하는 한편, 세계 수입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원유·자본재·부품 등에 대해서는 공동 구입관리를 위한 수입협력기구를 만들어 3국이 같이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시베리아 가스·유전 등의 공동 개발 및 공동 저장 등을 위한 협력기구를 설립, 3국간 산업과 무역의 연계 전략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산업전략과 무역전략을 재정금융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동북아개발은행이나 아시아통화기금(AMF) 등을 만든다면 세계 경제 속에서 동북아가 중요한 발전축이 될 수 있다. 그 지정학적 위상 때문에 한국이 센터가 될 수 있으며, 이를 지렛대로 한반도의 평화 체제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이종훈 (경실련 공동대표 / 전 중앙대 총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1. 1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