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논의 왜 겉도나 - 김민전
2003-01-11
정치개혁 논의 왜 겉도나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각 당에는 개혁특위가 구성되었고, 인수위 내에도 정치개혁연구실이 만들어졌다. 여기저기서 정치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개혁을 이뤄낼 것 같다는 기대가 들지 않는 바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근거 없는 이론,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 난무하고 있어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생각하는 아전인수격의 개혁,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는 중구난방형의 개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중.대선거구제로 가면 민주당이 영남에서,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의석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완화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게임의 룰이 변하면 유권자들의 행태도 변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중.대선거구론자들이 어떤 형태의 중.대선거구를 말하는지 정확하게 밝힌 바는 없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이 선거구당 2~5인을 단기비이양식 투표로 뽑는 것을 가정할 경우, 지난 대선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단 한석도 얻을 수 없음에 반하여 민주당은 영남에서 몇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를 알고 있는 영남의 유권자들은 호남에서는 한석도 안 주는데 우리만 주면 바보가 된다는 생각에서 다시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中.大선거구론자의 주장 각종 중.대선거구제의 단점은 차치하고라도 그 의도와는 달리 영남에서의 지역주의를 자극하고 이제 간신히 붕괴의 조짐이 보이던 지역주의에 안주하는 정치의 생명만 연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지만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지역주의가 강화될 것이라는 이유로 중앙당 약화에 반대하는 주장도 논거가 빈약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역정당을 벗어날 때까지는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일정 정도의 중앙당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나라당이 영남당이라고 하지만 전체 1백51명의 의원 중 영남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의원은 63명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은 1백3명의 의원 중 호남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의원은 29명에 지나지 않는다. 양당에서 각각 영남과 호남에 지역구가 있는 의원의 비율은 절반도 안되지만 그동안 이들이 당직과 당 의사결정권을 독점함으로써 영남당과 호남당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던 점을 감안하면 중앙당의 약화가 오히려 지역주의의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원내정당 강화에 찬성하는 쪽에도 그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들이 적지 않다. 원내정당 강화의 정신은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국민에게서 직접 정당성을 부여받지 않은 원외의 인사가 의원들을 구속해서도, 또 어느 지역의 주민이 다른 지역의 주민보다 우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의원이 의원을 구속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내 민주화의 논의는 사장된 채 의원 위에 의원을 놓기 위한 각종 지도체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나아가서 지구당의 민주화와 지구당의 폐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인식은 하지 않은 채 주인인 국민의 의원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원내정당을 강화하는 것인 양하는 천박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한 후기산업시대, 미디어선거시대에 전체 국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을 정도의 진성당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비현실적임에도 상향식 공천에 대한 각론은 나오지 않고 진성당원화의 선언적 구호만이 들릴 뿐이다. 낡은정치 청산에 초점을 이와 같이 현재의 개혁 논의가 적지 않은 허점이 있음에도 이것을 차분히 종합적으로 천착하고 보완하려는 노력보다는 개혁이 당내 주도권 싸움과 당리당략으로 폄하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더한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대선 결과에 나타난 낡은 정치청산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면, 정치개혁의 논의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더 이상 오염되지 않도록 보다 체계적인 논의가 가능한 중립적이고 초당파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중앙일보 2003. 1. 11 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