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는 다시 군림하는가? - 강석훈
	2008-10-29
케인스는 다시 군림하는가?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 침체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의 실물경제 침체는 주기적으로 맞이하던 짧은 겨울이 아니라 혹독한 추위를 동반한 긴 겨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시장 역할을 중시하던 미국 경제 시장에서 위기가 출발했다. 시장 기능보다 정부 역할을 강조하던 케인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것처럼 보인다. 최근 케인스주의가 부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부동산 버블이나 최근 주식 가격의 급등락은 합리적 시장 견해보다는 케인스가 주장한 '야성적 충동'으로 더욱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기 침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서 금리정책은 한계가 있고,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는 케인스의 재정정책 중시론과 맥을 같이한다. 최근 사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은 시장은 무질서하고 무너지기 쉬운 시스템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시장의 자생적인 자정 기능보다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가 보다 바람직한 시스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논의는 케인스류의 정부 역할 증대론과 연계돼 현재 사태를 신자유주의의 실패라거나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라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고, 나아가 시장경제 체제의 실패라는 견해조차 대두되고 있다. 이에 반해 이번 상황은 신자유주의나 시장의 실패라기보다는 일부 제도와 정책의 실패이며, 이러한 점을 보완하는 경우 보다 진화된 시장경제 체제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패러다임 변화론과 시장경제 진화론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어느 쪽 견해가 일방적으로 옳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까지 관련 정보와 연구가 부족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이러한 논의는 향후 본격화될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서는 이러한 논의에서 유의해야 할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시장경제는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 체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본성에 근거한 제도다.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하는 경우에도 항상 정부 역할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논의는 정부도 시장경제 체제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인이라는 관점에서 정부와 시장 역할에 대한 최적 분담점을 찾아 나가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념적인 논의가 아니라 과학적인 논의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산업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번의 금융위기는 탐욕을 본질로 하는 금융시장에서 시장의 규율이 시장 참가자들의 모럴 해저드를 방지하는 데 실패할 수 있으며, 똑똑하다던 감독 당국이나 금융회사의 리스크관리팀도 시스템이나 회사의 존망을 결정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리스크조차 제어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향후 이러한 점을 적절하게 보완하는 금융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겨주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산업의 특성이 다른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금융의 자기복제 기능, 달리 말하면 신용창출 기능이나 자산의 유동화 기능 등이 다른 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글로벌화는 계속 진전돼야 한다.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가 각국의 금융위기로 번지는 것은 금융의 글로벌화에 기인한 바가 컸다. 우리는 금융의 자유화 진전과 금융의 글로벌화가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한 바 있다. 따라서 향후 이러한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감독시스템과 국제금융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글로벌화의 재점검과는 별개로 국제교역의 증진은 계속돼야 한다. 케인스주의가 현재 시점에서 미치는 함의점은 크다. 그러나 전면적인 케인스주의, 즉 국가개입주의와 정부 기능 강화론으로 시장과 자율과 글로벌화의 진전이라는 패러다임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양자를 보완재로 인정하면서 이 시대, 이 땅에 가장 적합한 최적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매일경제 2008. 10.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