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 개혁안의 허실 - 안재욱
	2002-12-05
회계제도 개혁안의 허실 정부는 최근 회계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회계정보의 정확한 작성과 적시 제공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안은 오히려 기업의 경영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 개혁안의 골자 가운데 하나는 대주주 및 경영진의 책임 강화를 위 해 기업의 회계에 대한 CEO/CFO의 인증 의무화다. 기업가가 회계를 인증 한다는 것은 그 회계의 명백함을 보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무결한 회계란 있을 수 없다. 회계상의 실수나 누락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가의 인증 의무화는 불가능한 것을 보증하라는 말이다. 이로 인해 기업과의 이해관계자들 간에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소송 그리고 규제당국의 빈번한 간섭의 소지가 많다. 기업가는 본질적으로 모험가이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험을 통해 이윤을 얻는다. 이 같은 기업가의 모험적 활동은 국민경제 발전의 근간이다. 수많은 갈등과 소송 그리고 정부의 간섭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업가들은 모험을 해 가면서 기업을 운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또 개혁안에서 스톡옵션 관련비용이 재무제표에 적절히 반영되 도록 공정가치법에 의한 평가를 의무화했다. 스톡옵션의 공정가치는 실 제 비용이 아닌 부정확한 추정에 불과하다. 보통 옵션의 공정가치를 평 가하는 데 블랙-숄즈 모형과 같은 옵션가격 모형을 사용한다. 그런데 모 든 옵션 모형은 많은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권리행사와 예상 주가변동 가능성, 무위험 이자율 산정에 추정자의 자의성이 많이 개입된다. 이러 한 모형에 의해 추정된 결과를 기업의 실제 재무제표에 반영시키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정부는 코카콜라, 뱅크원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일부 미국 기업 들이 스톡옵션의 비용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겠다고 하니까 그것이 마치 최고선(最高善)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많 은 경제학자들이 반대하는 등 미국에서조차 논란이 많다. 이런 제도를 검증도 없이 좇아가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처사다. 정부는 이와 함께 회계법인이 감사업무 수행 시 이해상충 요인을 제거 하기 위해 컨설팅과 감사업무 간 방화벽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해상충 소지가 큰 컨설팅 업무의 수행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가 우 려하는 대로 한 기업에 대해 컨설팅하는 회계법인이 동시에 그 기업을 감사하면 이해상충이 존재한다. 만일 감사자가 회계상의 문제를 보고한 다면 그의 컨설팅 수입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회계감사법인은 이를 정확히 보고하지 않을 유인을 갖게 된다. 실제로 이 문제는 미국 엔론 사 사건에서 불거졌다. 이 회사의 회계감사와 컨설팅을 동시에 맡고 있 던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이 엔론 사의 재무제표를 정확히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컨설팅업무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얼마든지 시장의 힘에 의해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재무제표 등 기업의 정보를 공개할 때 그 기업이 어떤 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를 받고 있는지를 명시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투자자들과 주주들은 그 기업에 대한 감사가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발표된 재무제표 등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보를 갖게 된다. 이는 주가에 반영돼 그 기업의 주가가 낮게 형성될 것이다. 회계법인 역시 공정하지 않은 회계 감사를 계속하게 되면 시장에서 평판이 나빠져 수입이 줄게 된다. 물론 이 제도로 인해 모든 기업과 회계법인이 정직하게 회계보고와 회 계감사를 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어느 사회건 부정직하고 비윤리 적인 기업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제도가 더 효과적으로 현 안을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 면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장기적으로는 회계산업을 쇠퇴시 킬 수도 있다. 정부 간섭보다 시장의 힘에 의해 추진될 수 있도록 법안 을 만들어야 개혁의 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내외경제 2002. 12. 5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