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거듭나는 계기돼야 - 석종현
	2007-11-05
국세청 거듭나는 계기돼야 현직 국세청장이 사상 처음으로 피내사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현직 국세청장의 검찰 소환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생긴 것이다. 국세청장은 국세행정의 최고 집행기관이고,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변양균 - 신정아 사건에 이어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 사건의 연장선에서 대통령 측근 비리와 청와대 인사 시스템 미비로 임기 말 노무현 정권의 모럴 해저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심재철 의원은 국회 국감에서 “변양균 사건으로 청와대가 온갖 추문과 비리로 얼룩진 희대의 도덕성 파탄 집단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으며, 도덕성을 앞세운 노 정권의 최고 권력집단 내에서 시정잡배들에게서조차 보기 힘든 추잡한 범죄행위와 반인륜적 행위가 종합선물세트처럼 만연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전군표 국세청장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5차례에 걸쳐 정상곤(구속중)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6000만원을 인사청탁 명목으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게다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 청장은 지난 8월 말과 9월 중순 2차례에 걸쳐 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정 전 청장에게 면회를 가 전 청장에게 금품을 전달한 부분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말라고 하라고 지시해 증거인멸을 시도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직자가 뇌물을 받아 범죄를 저지른 경우 사법처리 수순을 밟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전 청장은 검찰로 가면서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 사실이 아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공정한 수사로 검찰이 진실을 가려줄 것”이라고 한 뒤 “언론은 너무 빨리 가지 마라.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전 청장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변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다가 마침내는 사실인정 단계를 거쳐 사법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본 국민은 전 청장의 말을 쉽게 믿지 않고 있다. 혐의 없음을 믿고 싶은 심정은 전 청장보다도 사실 국민이 더 간절하다. 납세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국민은 이번 사건에서 국세행정이 뇌물이나 로비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는 의혹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국세행정을 불신하게 된다. 행정조직 내부에서 상납 관행이라니, 그것도 지방청장이 국세청장의 부족한 업무추진비(판공비)를 보조해주는 것이 관행이라니 말이 되는가. 예산상 업무추진비가 부족한 것은 명약관화한 일인데, 지방청장이 국세청장에게 업무추진비를 보조해 주는 것이 관행이라면 세무관서마다 각 기관장의 업무추진비를 하급기관들이 보조해 주는 관행도 존재한다는 말인가. 예산상 배정된 업무추진비가 부족하다면 그것은 예산 책정의 문제인 만큼 법외적(法外的) 방법은 상납 관행으로 대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번 전 청장에 대한 검찰 내사로 검찰과 국세청의 전통적 우호관계가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일각에서는 “검찰이 증거도 없는 의혹을 매일 조금씩 흘리면서 여론몰이로 국세청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이는 세수 확보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2만 국세청 직원을 무시하는 처사”로 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힘센 기관’ 간의 기세 싸움으로 보기도 한다.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국세행정의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는 점에 있다. 전 국세청장은 혐의가 없다면 검찰 수사에 당당하게 응해 실체적 진실 규명에 협조해야 하며, 검찰도 여론몰이로 국세청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수용하여 ‘힘센 기관 간의 기세 싸움’이라는 항간의 인식을 불식해야 할 것이다. 국가기관 간의 기세 싸움이 결국은 국가와 법의 권위를 실추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석종현 (단국대 교수·법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7. 11. 3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