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창조, 박물관에서 찾자 - 김종규
	2007-11-02
지혜와 창조, 박물관에서 찾자 옛 어른들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통해 현명과 지혜를 얻으려 했다. 필자 역시, 경영과 운영자로서 중요한 판단이 필요할 때면 늘 좋은 책을 가까이하며 현인군자의 가르침을 통해 난관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혼돈의 시기에는 옛 것은 우리들에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예지력을 준다. 뿐만 아니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미 나와 있는 무엇인가를 모방하고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원리를 파악하고 기본이 튼튼해야 창조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옛 것은 현재에서 미래를 제시해 주는 중요한 매개로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미술관은 바로 인류 문화와 정신을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작품이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유물·작품을 통해 관람인들에게 가볍게는 추억을 상기하게 하고 보다 발전적으로는 슬기와 창조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관광수지 적자가 너무 커 중대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 삶의 질 향상으로 해외여행이 느는 데다, 과열 양상을 띠고 있는 영어교육, 조기유학 등으로 한국인의 해외 출입은 많지만 특별한 관광을 추구하는 외국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건전한 해외여행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우려되는 관광의 형태들은 당국과 개인을 막론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한국에는 볼 것도, 살 것도, 먹을 것도, 즐길 것도 많지 않다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왁자지껄 많은 축제가 철철이 펼쳐지고 엑스포니 비엔날레니 하는 행사도 꽤 많은데 말이다. 아마도 행사의 정체성과 독창성 결여 탓일 것이다.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인프라, 여기나 저기나 똑같은 문화 상품과 음식, 콘텐츠 등…. 누구나 독특한 것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욕구에 창의적이고 진취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앞의 우려를 해소할 수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500여개의 박물관·미술관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박물관·미술관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 국민은 드물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우려와 그에 대한 대안을 전국 도처에 있는 박물관·미술관에서 찾고자 한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관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그 폭도 점차 커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새로 생겨나는 박물관 가운데는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형태의 것이 많다. 쇳대, 한과(韓菓), 초콜릿, 아프리카, 옹기, 짚풀, 카메라, 술, 만화, 녹차, 커피, 영화, 장난감, 로봇, 축음기, 장신구, 떡부엌 등.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처럼 보다 전통적이고 개념에 충실한 박물관도 다양하게 형성돼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우리 박물관에는 온고이지신과 발전적인 창조의 근거가 되는 옛 것과 재미가 즐비하다. 최근의 학력 위조 사건 등은 문화계 전반에 적잖은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기업 등의 문화 후원까지도 문제가 되는 듯이 오도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나마 복권기금 등이 2004년부터 지원돼 활성화의 기로에 있는 박물관·미술관까지 위축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인구 대비 박물관 수가 크게 부족한 나라에 속한다.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박물관·미술관의 육성과 관심은 매우 직접적으로는 국민의 문화 가치 향상과 여행수지 적자를 크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다 발전적인 측면에서는 미래에 대한 지혜를 찾을 수 있는 공간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박물관에는 지혜와 창조가 산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 삼성출판박물관장) 출처 - 문화일보 2007. 11.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