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선과 언론의 역할 - 박효종
	2007-11-01
2007 대선과 언론의 역할 문화일보가 창간 16돌을 맞았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세파를 겪으면서도 굳건하게 성장한 문화일보의 특징은 작지만 강하다는 데 있다. 작은 고추가 맵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문화일보가 ‘작지만 강한 언론’으로 우뚝 선 비결은 단순하다. ‘곡필아세(曲筆阿世)’하지 않고 오직 우직스러울 정도로 언론으로서의 지조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물론 정론지로서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은 아니다. 신뢰가 하루아침에 얻어질 수 없는 것처럼, 권력이 주는 당근에 현혹되지 않고, 권력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정론지의 성가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을 마주하려고 땀을 아끼지 않고 현장을 누비고 또 이에 화답하듯 올곧은 주장들이 데스크로부터 나오니, 눈송이가 모여 눈사람이 되듯, 뿌듯한 성취를 만든 것이다. 여론을 움직일 힘을 가졌으면서도 매일매일 혹독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 언론의 운명이다. 이 평범한 사실을 왜 오늘처럼 의미 있는 날에 새삼 상기해야 하는가. 바야흐로 지금은 2007대선을 앞두고 조류가 바뀌고 바람이 바뀌는 것처럼, 권력의 향방이 결정되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이런 때일수록 많은 사람이 중심을 잃고 심지어 ‘오버’하기 일쑤다. 평소에는 병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도 ‘대통령병’에 걸리기도 하고 버스 줄서기 한 번 안하던 사람들이 ‘대선 줄서기’에 안달하며 대학의 ‘프로페서’들이 돌연 ‘폴리페서’로 탈바꿈한다. 점잖은 파우스트도 이미 악마 메피스토에게 유혹을 받았다면, 왜 민심을 움직이는 위치에 있는 언론에 유혹이 없을 것인가. 평범한 사람들도 바람이 드는 정치의 계절인데, 언론만이 무풍지대가 될 리 없다. 하지만 언론은 그럴수록 언론의 사명을 가슴깊이 되새기며 평상심을 유지해야만 한다. 언론의 덕목은 공정성에 있다. 사람들마다 편이 갈리고 있고 모든 게 쟁점화하는 상황에서 공정성을 유지하기란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일만 빼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약속들이 쏟아져 나오고 ‘공짜점심’뿐만 아니라 ‘공짜 아파트’ ‘공짜대학’도 가능하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혼돈에 빠지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좋은 말은 평지를 달릴 때가 아니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갈 때 알아본다. 또, 겨울이 되어 만물이 눈으로 덮일 때 비로소 소나무의 푸르름이 돋보인다. 그러려면 언론은 어떻게 해야 하나. 흰 것을 보고 희다고 해야지 더 흰 것처럼 과장해서는 안 된다. 검은 것은 그냥 검다고 해야지 원래보다 더 검다고 해서도 곤란하다. 또한, 본래는 흰색인데 검은 것을 적당히 섞어 회색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사실(事實)에 덧칠을 하거나 개칠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바로 이것이 언론의 공정성이다. 언론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펜이 칼보다 강한 상황은 저절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원래 펜은 칼보다 약하다. 이 일상적 상식을 뛰어넘으려면, 펜에 비상한 의지와 용기가 요구된다. 곡필이 아닌 정론을 쓸 때 펜이 강한 것이지 그렇지 못할 때 칼은 쉽게 펜을 부러뜨릴 수 있다. ‘현재의 권력’이든 ‘미래의 권력’이든, 권력이란 정론 앞에선 작아지고 곡필 앞에서 커지는 법이다. 그동안 문화일보는 사실 보도와 사설을 통해 민심과 시대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진정성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 길에는 마침표가 없고 끝없는 정진만이 있을 뿐이다. 한 번이라도 방심하면 그 힘들게 쌓아올린 성가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이번 대선에서도 문화일보는 펜이 칼보다 강함을 증명할 수 있을까. 많은 독자들은 애정을 갖고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7. 11.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