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국회스럽다'는 말 나오겠소" - 박효종
	2007-10-30
"이젠 '국회스럽다'는 말 나오겠소" 대의기관인 우리 국회에는 유난히 아름답지 못한 서술어가 ‘바늘에 실 가듯’ 붙어 다녔다. ‘방탄국회’니 ‘식물국회’니 ‘막말국회’니 ‘폭력국회’ 등등이 삼류 국회의 대명사였다. 이제 민주화도 진전돼 그런 서술어들을 떼어버릴 때가 된 것 같지만, 요즈음 사정을 보면 불명예를 벗기는커녕 ‘국회스럽다’는 신조어를 유행시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국감현장마다 벌어지는 떠들썩한 소동들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국정을 감사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차기권력’을 위해 복무하고, 또 ‘미래의 권력’을 위해 감사현장을 오염시키는 데 바쁘기 때문이다. 2007국감이 이른바 ‘이명박(죽이기) 국감’, 아니면 ‘정동영(죽이기) 국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실하게 이루어지는 국감현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듯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유감이다. 왜 이런 황당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자에게는 이 세계가 두 가지로만 되어 있다. 사슴을 보든 악어를 보든 또 나무를 보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두 가지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를 보아도 햇볕으로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할 줄 모르고 밤의 별을 보아도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하는 식의 셈법을 하며 별의 낭만을 즐길 줄 모른다. 가을이 와서 나무가 벌거벗어도 ‘나를 버리며 살라’는 삶의 미학을 깨달을 줄 모른다. 물론 이런 일을 두고 사자를 탓할 일은 아니다. 대자연이 사자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니, 사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지금 우리 국회의원들의 눈에 딱 두 가지밖에 안 보인다는 점이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상대방 대선후보를 깎아내리고 흠집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었나 하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근거없는 폭로와 욕설경연장으로 전락한 국회가 부조리하게 보이는 것은 국회의원들은 사자와 달리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명실공히 한사람 한사람이 다 헌법기관이고 또 대통령처럼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국민들로부터 위임을 받은 존재다. 청와대는 임기말인데도 대통령자문정책위원 29명을 새로 위촉할 정도로 과잉 열성인데, 국회는 스스로 임기말을 아는 ‘파장국회’인지 ‘파장국감’을 열고 있는 것이다. ‘레임덕’ 현상은 행정부보다 국회에 찾아온 것인가. 더욱이 엊그제는 일부 의원들이 국감 중에 향응을 받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다. ‘향응국감’에서 어떻게 국정감사의 엄숙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인가. ‘백년하청(百年河淸)’처럼 우리 선량들은 언제까지 윤리의식 부재라는 멍에를 지고 가야 할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절제’라는 덕목을 잃어버렸다. 물론 그것이 10년 동안 잃어버린 것인지, 5년 동안 잃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잃어버린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부터 자신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았다고 헌법소원을 내는가 하면, 임기말 정부라면 다음 정부에 바통터치를 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바통을 잔뜩 움켜지고 운동장 몇 바퀴 더 뛸 태세다. 이것은 절제를 잃어버렸다는 증거다. 일을 하려는 것은 좋으나, 일도 적당히 하고 정리할 줄도 알아야지 ‘일중독’에 걸린 것처럼 처신하는 것은 권력의 위세일 터이다. 국회도 절제를 잃어버렸다.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청·백으로 나누어 싸울 줄만 알지 폭로와 욕설이 국민들 앞에 부끄러운 줄 모른다. 또 싸우는 것도 ‘주체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리전쟁’이나 ‘청부전쟁’하는 것처럼 싸우니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입법자들이 자나 깨나 가슴에 새겨야 하는 것은 국리민복이 아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검사스럽다’는 말이 나왔다. 또 대통령을 빗대어 ‘○○스럽다’는 말도 나왔다. 이제는 ‘국회스럽다’는 말이 나올 차례인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7. 10. 2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