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버섯이 보여준 정권부패 - 송복
	2002-11-21
송이버섯이 보여준 정권부패 어느 정권 사람들보다 이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하다는 것은 비단 이 정권의 엄청난 부패 때문만은 아니다. 부패에 관한 한 이전 정권 사람들이라고 해서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정도의 차이야 있을지 모르지만 그 차이야 ‘五十步 아니면 百步’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랴. 이 정권 사람들도 입만 열면 으레 이전 정권 사람들도 우리 못지 않게 부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정권의 부패를 누구나 심각하게 우려하고 지탄하고 그리고 아프게, 심지어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격렬히 비난하고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그 부패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이며 민감성 때문이다. 굶주림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초기 산업화시대, 수단적 가치(도덕적 황폐)만 성행하던 고속성장시대, 인권유린의 권위주의 시대는 부패보다 더 큰 악이 있었고, 도덕의 황폐보다 더 큰 악이 있었으며 거기에 인권유린보다도 더 큰 악이 있었다. 바로 경제성장과 급속한 산업화를 저해하는 요인들이었다. 그 요인이 환경오염이든 독재든 인권유린이든 혹은 고위직층·지도층의 부패든 그런 것은 다음다음 문제였다. 경제발전이 제일의(第一義)였고, 오늘날 북한처럼 굶주림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제일 목표였다. 그이상의 상위 가치는 없었다. 부패에 대한 국민의식과 국민적 민감성은 거론하기도 찾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국민의식, 그러한 국민적 민감성은 지난 세기의 80년대 후반을 거쳐 90년대에 이르면서 달라졌고, 21세기에 오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은 개인의 자유며 인권보다 더 큰 가치가 없고, 국가며 공·사기업의 투명성보다 더 높은 가치가 없으며, 고위직층·지도층의 도덕성보다 더 귀한 가치가 없는 것이 됐다. 가치에 관한 한 우리도 선진국 수준에 올랐다. 어떤 가치여야 한다는 가치의식과, 그 가치의 현재 상태나 현재 수준에 대한 가치 민감성은 지극히 높고 예민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현 정권의 실세며 참여자들은 옛날 소리를 하고 있다. 시대가 어떻게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각이며 요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전혀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야말로 변화에 대한 무지며 의식에 대한 둔감성이다. 그 무지와 둔감성이 부패를 더 심화시키고, 부패에 대한 국민적 민감성을 더 예리하게 만들고 있다. 부패의 정도가 설혹 옛날과 다름이 없다 해도 국민은 부패를 열 배 스무 배 더 느낀다. 이유는 오직 하나, 부패에 대한 국민의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또 그 달라진 의식 때문에 부패에 대한 국민적 ‘민감지수’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높아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며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우리 국민도 선진국 대열에 낄만한 의식을 가졌다는 표시다. 문제는 국민이 아니라 현재의 대통령과 대통령 특보, 통일부장관들을 포함한 현 정권 실세며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이며, 그 해이에 대한 이들 고위층 인사들의 무지며 둔감이다. 그것이 바로 김정일이 보낸 송이를 누구 한 사람 ‘아니오’라는 소리 없이 ‘나눠 먹었다’는 저간의 뉴스이다. 그것도 누가 볼세라, 알세라 쉬쉬하며 나눠 먹다가 사세 부득해서 명단을 공개했다는 한심하고도 가증스런 이야기다. 핵무기를 개발중인 북한의 선물을 그래도 내 놓고 받지 못하고 뒤에서 숨기며 받았다는 것은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 그들 속에는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그 증거에 아랑곳없이 우리를 실망케 하고 분노케 하는 것은 받은 사람들의 면면(面面)이며, 그들의 행동이며 자세다. 그들 110명중에는 학자 교수 문인 언론인이 3분의 1이 넘는다. 어째서 그들 중 어느 한사람도 ‘아니오’라며 거절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어째서 그들 중 한 사람도 핵폐기를 요구하며 ‘이것은 정말 도리가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어째서 그들 중에는 선비 정신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도 없었을까. 어째서 그들 중에는 자기 지위에 합당한 도덕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도 보이지 않을까. 이 정권의 정치인이야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 하자. 또 기업 하는 사람들이야 ‘아니오’소리보다는 기업이 더 중요하다고 하자. 하지만 지식인은 사실에 엄정해야 하고 시비(是非)에 분명해야 한다. 그런 지식인이 이 정권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 그것을 이번의 송이버섯 하나가 잘 말해준다. 이 정권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 김정일의 송이버섯 선물 만큼 백일하에 잘 들어내주는 것도 드물다 할 것이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미래한국 2002.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