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와 '규모의 함정' - 조희문
	2007-10-13
부산국제영화제와 '규모의 함정' 너무 커진 몸집에 옷이 맞지 않는 것인가. 12일 폐막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몰아치는 비바람과 갖가지 사고와 소란, 불만, 비판으로 얼룩졌다. 영화제 당국도 해명과 설명, 반박에 적지 않은 시간을 부담해야 했다. 행사를 준비한 당사자들로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불안하다는 지적이나 주장에 역정을 낼 것이다. 역대 최다 관객(19만8603명)이 영화제에 몰렸고, 64개국 271편의 영화가 상영됐으며, 그 중 65편이 월드프리미어(최초 개봉)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행사 중 최고가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규모나 프로그램 구성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가장 성공한 문화콘텐츠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 평가의 대부분은 외형적 크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영화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언론은 ‘영화의 바다에 빠져보자’며 몇 나라에서 몇 편의 영화가 참가했는지를 전하고, ‘꼭 봐야 할 영화들’ 목록을 추천한다. 입장권 예매가 시작되면 개막식 표가 발매 몇 분 만에 매진됐고, 어느 영화는 몇 초 만에 동이 났다는 등의 기사를 내보낸다. 모두 영화제 측이 ‘행사의 규모와 성공’을 과시하듯 배포하는 보도 자료들을 인용하는 것이다. 수영만에서 야외행사로 열리는 개막식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자랑거리이자 하이라이트다.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들어올 때마다 환호가 넘치고, 분위기는 뜨겁다. 언론들이 집중 조명하는 행사도 바로 개막식이고 관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행사도 개막식이다. 5000여 관객이 자리를 지키고 축하 불꽃이 터지며 바다와 어우러진 가을밤의 풍경은 그대로 그림이다. 다른 영화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장관이다. 폐막식 역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지만 집중도나 열기에서 개막식이 훨씬 앞선다. 그러나 영상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개막식 풍경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외형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이벤트다. 스타를 비롯한 영화인, 각 분야의 초청자들, 일반 관객들이 동시에 집결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교통·의전·안전·중계·진행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음향·조명·의자 등 각종 설비와 장비의 양도 보통이 아니다.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엉켜버리면 행사의 실패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처럼 비바람이라도 닥치면 더욱 치명적이다. 어느 영화제나 개·폐막작 선정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해 영화제의 경향을 보여주는 얼굴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이뤄지는 야외 상영은 들고나는 사람들의 소음, 정교하지 못한 화면과 음향, 집중력을 방해하는 한기 등으로 인해 온전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어렵다. 행사를 위해 드레스와 턱시도 등 예복 차림으로 참석한 스타들이 가을밤의 추위와 시장기를 견디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다. 결국 시작할 때의 화려함은 행사 중반을 채 넘기기도 전에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영화를 위한 행사가 결과적으로는 떠들썩한 이벤트로 흐를 뿐 영화에 대한 예의도, 영화를 아끼는 관객들에 대한 배려도 사라지는 것이다. 예년에 없던 논란과 시비, 비판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쏟아진 것은 단순한 부주의나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잠복해 있던 문제들이 표출되는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은 영화제 측이 유념해야 할 경구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영화인들과 부산시민들의 노력으로 키워낸 모범적인 행사이며,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가치 또한 충분하다. 그러나 그 방향은 크기와 규모가 아니라 내용과 특성화여야 한다. 규모를 내세울수록 안정적인 발전은 위태로워진다. 조희문 (인하대 교수·영화학 / 바른사회문화포럼 회장) 출처 - 문화이롭 2007. 10.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