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인수인계 체계화를 - 박재완
	2002-11-20
대통령 인수인계 체계화를 불과 한달 뒤면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된다. 이후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는 길고도 짧은 66일이 남아 있다. 정권 이전 경험이 일천한 우리는 이 기간중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제도와 관행이 확립되지 않아 자칫 국정 공백이나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노태우 당선인처럼 전두환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시간만 보내거나, 거꾸로 김대중 당선인과 같이 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일찌감치 전면에 나서 마치 2개의 정부가 존재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게다가 네거티브 캠페인과 지역투표 성향이 재현되고, 과거처럼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판명되면 그 후유증으로 정권 이전기의 혼란은 심해질 것이다. 대통령의 형식적인 권한과 당선인의 실질적인 리더십이 병존하는 ‘레임덕’ 기간에 전쟁이나 외환위기와 같은 내우외환이 발생하면 사태가 악화된다. 미국도 1933년 금융위기와 정권 이전기간이 겹쳐 곤욕을 치른 이듬해인 1934년 헌법을 개정, 대통령 취임일을 3월 4일에서 1월 20일로 앞당겼다. 아울러 케네디 대통령 주도로 1963년 ‘대통령직 인수·인계법’을 제정한 이래 2000년까지 3차례 개정을 거쳐 정권 교체의 실무작업을 제도화했다. 정권 교체를 통해 국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바람직한 변화를 동시에 모색하려면, 우리도 국정 인수·인계의 대상·절차, 인수팀의 역할·권한·책임 및 정부 지원 등을 체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국의 제도와 관행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째, 미국의 대통령직 인수팀에는 차기 정부의 요직 내정자를 비롯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문가가 참여한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직 인수위는 국회의원 중심으로 구성됐다. 의원내각제도 아닌데, 국회의원들이 행정권 인수·인계를 주도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과 배치되며, 대표성·전문성·책무성도 취약해지므로 지양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당선인은 선거가 끝나자 마자 정권 인수팀을 구성해 보좌진 등 정무직 인선, 초기 입법안 구상, 공약의 정책 전환, 예산안 검토 등 산적한 과업을 체계적으로 수행한다. 특히 취임 이전에 요직 내정자를 발표하여 상원의 인사청문을 촉진하는 한편, 이들 역시 부임 준비를 충실히 하도록 배려한다. 셋째,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미국 의회는 당선인의 요직 인선을 돕기 위해 정무직 목록과 직무 내역을 수록한 자료집(plum book과 prune book)을 발간한다. 인사 파일을 의회가 정리하는 까닭은 작업의 중립성 때문이다. 정권을 인계할 때 ‘존안 자료’를 파기하기도 했던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넷째, 미국은 대통령직 인수·인계를 공영화했다. 사무실, 인건비, 공무원 파견, 통신과 우편, 인쇄, 항공 편의는 물론 2000년부터는 요직 내정자에 대한 훈련·안내와 직무목록·편람 제공, 나아가 인수업무 정보시스템까지 개발했다. 다섯째, 미국은 정부 지원의 내역과 경비 한도를 법률로 규정하여 정권 인수의 예측 가능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있다. 정권 교체기마다 임기응변 방식으로 물러나는 정부에서 한시적인 대통령령을 제정하고, 예산도 편성하지 않은 채 예비비에서 지출하는 우리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여섯째, 미국은 대통령직 인수뿐만 아니라, 인계에 대해서도 정부가 지원한다. 국정 운영의 노하우를 정리·축적할 수 있도록 정·부통령의 임기 만료 30일 전부터 7개월 동안 인적·물적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도 정권 인수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인계 활동 역시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 미국은 인수·인계가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윤리 규제를 도입했다. 현물을 포함한 기부금품의 상한 설정 및 내역 공개, 회계감사, 인수·인계 직원의 최근 취업 상황 공개 등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제15대 인수위의 살림을 위원들의 십시일반에 일부 의존했으나, 이는 ‘이익 상충’의 소지를 파생시키므로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면서 국정 최고책임자이자 행정수반이므로 그 역할과 권한이 막중하다. 그러나 당선인은 대통령직을 수행한 경험이 전무하여 무지와 미숙, 교만과 성급함에 따른 학습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이는 결국 국민에게 귀착된다. 66일이 여백으로 남지 않고 생산적인 완충기가 되도록 체계화해야 하는 까닭이다.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2. 11. 1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