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에 빚더미 안기는 2008예산 - 류동길
	2007-10-10
차기 정부에 빚더미 안기는 2008예산 노무현 대통령은 8일 국무총리가 대신 읽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성과, 집권 5년 간의 국정운영 평가, 앞으로의 국정 운영 방향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은 그동안의 정책 실패에 대한 성찰은커녕 자화자찬과 합리화로 일관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군사적 신뢰 구축과 평화를 제도화하는 틀을 마련했고 북핵 문제도 빠른 속도로 완전한 해결에 이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많은 국민의 인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들린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지 않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그대로 두고 군사적 신뢰 구축과 평화 정착을 말하는 것은 허구나 다름없다. ‘평화가 온다’고 선언하는 것이 진짜 평화일 수는 없다. 한국전쟁 종결과 평화 정착으로 가기 위해 숱한 고비를 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상회담 성과를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실현해 나가기 위해 남북 정상이 수시로 만나 현안을 협의키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임기를 4개월여 남겨 놓고 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이번 회담에서도 답방 언급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만난다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것인가. 남북간 합의가 몇 차례 있었지만 합의와 실천은 다른 문제가 아니던가. 이번 대선이 공명정대하게 치러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선거에 영향을 줄 언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국민도 많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의 경제 실적이 좋았다는 주장은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은 또 어떤가. 그동안 펼친 정책, 예컨대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비전 2030, 국가 균형발전정책 등의 부담은 현 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와 국민이 떠맡을 몫이다. 또한, 남북경협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게 돼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각종 남북경협사업의 소요 예산이 얼마 들지 않을 것이라 하고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노 대통령은 복지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체 예산에서 복지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을 2003년 20.2%에서 2006년 27.9%까지 끌어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복지에 치중한 정책의 결과 경제 성장은 저조했고 청년실업자는 양산되는 등 경제는 활기를 잃었다. 복지 확대는 중요한 과제지만 가장 확실한 복지는 경제 활성화를 통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복지 확대가 아무리 바람직하다고 해도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재정이 건전해야 국가경제도 건전해질 수 있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재정이 비교적 건전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채무가 300조원에 이르고 있는데도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7.9% 늘어난 257조원으로 짰다. 막대한 국가채무를 다음 정부에 떠넘기게 됐는데 복지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고 하고 남북경협 확대를 강조하며 팽창 예산을 짰다. 세금은 내야 하지만 안 써도 되는 곳에 돈 쓰는 건 참지 못하겠다는 국민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야 할 까닭은 분명하다. 좋은 목적과 의도로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실패하는 경우는 흔하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자산일 수 있다. 정책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싶고 잘못된 정책을 합리화하고 싶겠지만 정직한 정부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이 아쉬운 것이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7. 10.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