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역주행 언제까지 - 김태기
	2007-09-10
현대車 역주행 언제까지… 현대자동차 노사가 10년 만에 파업 없이 임단협을 체결하였다. 조합원 77%가 임단협 결과에 찬성하였고 사용자 측도 고무되어 있는 듯하다. 노사가 무분규로 협상을 타결한 배경으로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가 될 수 있는 파업에 조합원들이 부담을 느낀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울산 지역의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현대차 노조에 파업을 자제해 줄 것을 호소해왔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현대차 노사가 소비자들의 이익은 안중에 두지 않은 채 자신의 몫만 챙기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분개하고 있었다. 현대차 노사가 파업 없이 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축하해줄 일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그냥 좋아할 성질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현대차 협력업체는 물론 다른 사업장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현대차의 임금복지 수준은 우리나라 제조업계 중 최고에 속하며 대졸자 초임은 세계 최강의 자동차회사로 손꼽히는 도요타를 능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차는 인건비 부담을 생산비용 절감으로 흡수하기 위해서 협력업체의 ‘희생’을 요구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대차 노조가 요구했던 사항에는 임금 문제보다 더 무리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자동차를 생산할 공장과 연간 생산량을 노사가 합의할 것, 일감이 없으면 해외 공장의 물량을 도로 가져올 것,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의 수출입은 노조의 허락을 받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경쟁을 차단하고 보호막을 강화하겠다는 속내를 담고 있다. 노사관계의 현실 속에서 이러한 요구를 곰곰이 따져보면 한국자동차산업의 앞날이 불길해 보인다. 현대차가 독점적 위치에 있다 보니 노조가 고객의 이익을 무시하고 경쟁사의 존재를 간과하는 오만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이러한 요구를 한 이면에는 조합원들이 세계 자동차산업의 치열한 경쟁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차종을 생산하고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는 시장수요에 따라 결정되며 어디에서 생산할 것인지는 비용에 따라 결정된다. 노사가 생산량을 합의해 본들 수요자가 외면하면 팔리지 않고, 노조의 허락으로 수출입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공장이 있는 경쟁사가 수출을 늘려 현대자동차의 고객을 자기 고객으로 만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현대차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현대차는 자동차산업의 경쟁이 격화되어서 일자리가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에 비해서 생산성은 뒤떨어지는데도 임금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임금수준에 비해서 생산성이 떨어지면 현대차 가격은 비싸지기 마련이다. 이 바람에 고객은 다른 회사가 만든 자동차에 눈을 돌리고 결국 조합원들은 일감 부족에 시달린다.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져도 보다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더 싸게 만들 수 있다면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은 보장된다. 이것은 추락하는 미국의 자동차산업과 번성하는 일본 자동차산업의 명암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경쟁을 차단하고 보호막은 강화하려는 노조의 움직임은 현대차 노조뿐 아니라 다른 노조에서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으로는 조합원들의 권익을 지키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수렁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의 자동차 노조는 의회를 총동원해서 수입 장벽은 높이고 수출시장의 장벽을 허물려고 했지만 미국 자동차산업은 시간이 갈수록 경쟁력을 상실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은 지금이라도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의 이익을 존중해야 노동자들의 일자리 안정도 보장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세계일보 2007. 9. 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