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세제개편안에 서민은 없다 - 안종범
	2007-09-02
2007 세제개편안에 서민은 없다 정부의 이번 세제개편안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개편의 항목을 세어보면 130개가 될 정도로 큰 규모이고, 또 정부가 그토록 반대하던 감세의 폭도 예상 밖으로 크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런데 이런 놀라움 못지않게 강한 의문이 생겨난다. 우선 왜 11년 동안 방치했던 세율구간을 이제야 조정하려 하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소득증가율보다 세금증가율이 2배에 달할 정도로 방치해 두다가 이제서야 조치를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율구간 조정을 다음에는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에도 근로자들의 세 부담이 너무 빨리 늘어난다는 불평이 한참 동안 쌓인 뒤에 마지못해 조정할 것인가. 또 최저구간은 20%, 중간은 15%, 최고구간은 20% 인상했는데 그 과학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점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은 아마도 이번 세율구간 조정이 근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물가 상승 이상으로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으려면 ‘물가연동 소득세’의 도입이 필요하다. 물가 상승만큼 매년 세율구간과 각종 공제 금액을 상향 조정해주는 물가연동 소득세를 도입하면 지금처럼 가끔씩 인심 쓰듯, 그리고 주먹구구식으로 세율구간을 조정해주는 일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가연동 소득세는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의 선진국이 오래 전에 도입,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돼 오고 있다. 필자가 2002년 연구논문을 통해 필요성을 제기한 적이 있고, 그 뒤로도 여러 학자들과 연구기관이 도입을 건의했으며, 최근에는 국회 예산정책처가 권고한 바도 있다. 보다 최근에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여러 감세 공약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물가연동 소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어도 이번만큼은 근본적인 세 부담 경감 대책으로서 물가연동 소득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의문점은 이번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세제개편안의 목적으로 내세운 중산·서민층의 세 부담 경감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근로자의 반이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세율구간 조정이나 각종 소득공제 개편으로 서민층의 세 부담이 경감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미 소득세를 안 내고 있는 서민들에게 더 줄여줄 세금이 없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다. 사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비록 소득세는 내지 않지만 부가가치세, 특소세, 그리고 유류세 등 간접세는 내고 있다. 간접세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보험료,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료 부담에 각종 부담금까지 합하면 서민들의 부담은 실로 엄청나다. 그런데 이번 세제개편안 130개 항목 안에는 이들 서민의 부담을 줄여주는 어떠한 조치도 없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중장기 세제개편안을 준비해 왔다. 한때 이 개편안의 일부가 공개돼 문제가 생기자 중장기 세제개편안 작업 자체를 중단시킨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것도 임기를 6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대규모 세제개편안을 내놓는 취지는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하다. 그리고 그동안 감세를 하면 재정수지가 악화된다고 감세안을 적극 반대하더니 지금 와서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은 극적인 입장 변화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진정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려면 근본적인 대책으로서 물가연동 소득세를 도입하고 또 서민 생활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유류세를 내리는 정도의 세제개편안이 필요하다. 그 나머지는 새로 출범하는 다음 정부에 넘겨야 할 것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7. 9.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