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언론을 '관변매체화' 하려는 건가 - 손태규
	2007-08-10
전 언론을 '관변매체화' 하려는 건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정부와 대통령이 언론에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는 말만큼 과장된 표현이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과 측근 정치인, 관리들이 줄기차게 언론의 오만과 횡포를 국민들에게 고발하고 하소연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그것을 아주 사실인 양 믿는 것처럼 보인다. 2003년의 ‘취재 지침’과 ‘기자실 운영 방안’부터 2005년의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최근의 ‘취재 시스템 선진화 방안’과 ‘취재 지원안’에 이르기까지 참여정부는 언론개혁을 구실로 갖가지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법과 제도는, 정부와 대통령이 언론의 희생자라는 저들의 호소를 염치없는 엄살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제어하기 위한 최상의 도구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법을 가지고도 참여정부는 언론의 조종·통제에 배가 고픈 모양이다. “기자실에 확실하게 대못질을 해 주겠다”는 대통령의 명을 받들어 멀쩡한 시설을 부수고 브리핑룸 통폐합 공사를 하니 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정부는 비보도와 엠바고를 정하고 이를 어긴 언론사를 제재하겠다고 한다. 또 정부 브리핑에 주 1회 이상 불참하면 출입증을 회수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기세는 그야말로 거침없다. 맞상대인 언론은 속수무책이다. 현재 정부의 브리핑은 기자들 사이에서 ‘계륵’으로 불린다. 참석하기엔 알맹이가 너무 없어 시간 낭비고, 안 가자니 찜찜하기 때문이다. 그런 브리핑을 일삼는 공무원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적 의무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브리핑에 안 오면 출입증을 빼앗겠다며 참석을 강제하려는 발상은 언론을 넘어서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엠바고는 정확한 기사를 위한 언론과 취재원의 협정이다. 취재원이 보도 시점을 정하고 미리 자료를 주는 것은 복잡한 사안을 기자들이 충분하게 공부하고 준비한 뒤 기사를 작성하라는 뜻이다. 이런 엠바고는 기자들의 지나친 특종 경쟁에서 빚어지는 오보나 과장보도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고도의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과학이나 의학보도에서 가장 흔히 이용되는 관행이다. 그러나 엠바고는 언론 통제를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국가 안보 또는 국익 등의 이름으로 언론을 통제하는 수단의 하나로 엠바고를 남용해 왔다. 절대적으로 정부에 정보와 자료를 의존해야 하는 언론으로서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한 엠바고 규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경쟁이 귀찮고 두려운 기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취재 방법이다. 결국 엠바고는 나태한 기자들과 교활한 관리들의 ‘담합’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싫어하는 기자실의 담합이 엠바고 때문에 정부와 언론 사이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국민들은 모를 것이다. 보도 시점은 물론, 특정 사안에 대한 보도까지 제한하는 엠바고를 제도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전 언론을 ‘국정 브리핑화’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언론통제 조치를 그렇게 강력하게 밀어붙이고도 정부와 대통령이 언론의 희생자, 약자라고 하소연한다면 단순히 염치없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언론개혁은 필요하다. 언론도 바뀌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공무원들이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언론의 개혁에 앞서 이뤄져야 할 개혁의 대상은 바로 정부와 대통령의 비뚤어진 언론 인식이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학부 교수 / 바른사회 바른언론포럼 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07. 8. 1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