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그림 '시몬과 페로' 가 주는 교훈 - 김민호
2007-07-06
루벤스 그림 '시몬과 페로' 가 주는 교훈 루벤스의 그림 `시몬과 페로`를 둘러싼 진실과 거짓의 논쟁이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이 그림은 로마의 철학자 막시무스의 책에 나오는 `페로의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소재로 루벤스가 그린 작품이다. 여러 화가들이 이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루벤스의 이 그림 속에는 늙은 노인이 젊은 처자의 젖을 빨고 있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늙은 노인과 젊은 여자가 부적절한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들 아는 것처럼 이들은 부녀 관계였다. 시몬의 딸 페로는 굶어 죽게 하는 형벌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아버지를 면회 갔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나 굶주린 탓에 거의 죽음에 이른 것을 보고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려준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마 당국은 그녀의 숭고한 사랑에 감동해 시몬을 석방했다고 한다. 그런데 루벤스의 이 그림이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와 그의 딸을 그린 것으로, 푸에르토리코인들의 애국심과 민족혼을 상징하는 작품이며 푸에르토리코 국립미술관에 전시돼 있다는 엉뚱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떠돌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의 반박으로 진실은 곧 밝혀졌지만 우리는 루벤스의 이 그림과 이 그림을 둘러싼 인터넷 공간에서의 거짓 논쟁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해석하기에 따라, 또는 생각하기에 따라 불쾌한 애정놀음으로 비화할 수도 있고 가족 간의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될 수도 있는 매우 민감한 상황이 연출된 이 그림을 사전 지식 없이 처음 접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노인의 손목에 묶여 있는 밧줄, 쇠창살 너머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병사들, 노인에게 젖을 물린 채 얼굴을 돌리고 있는 여인의 표정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기도 전에 혹시라도 우리는 이들이 부적절한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무조건 비난부터 하지는 않았을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일 계속되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 간, 또한 대통령과 야당 후보들 간 비난과 폭로에 엄청난 피로를 느끼고 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은 모두 나에 대한 공격으로만 들리고, 자신이 내뱉은 말은 모두 진실인 양 한 치 양보도 없이 퍼부어대는 비난과 폭로를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급기야는 대통령이 자연인 지위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선거에서 네거티브 전략이나 흑색선전만큼 순간에 큰 효과를 내는 것은 없기에 후보들이 이처럼 강력한 극약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약은 마약과 같아서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원래 네거티브 전략이란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약점이나 실수를 부각시켜서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나 지지도를 낮추려는 선거 전략이다. 따라서 네거티브 전략은 적어도 사실성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아야 할 전략이기는 해도 선거 진영으로 하여금 이러한 전략을 전혀 쓰지 못하게 막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반해 흑색선전이란 전혀 근거가 없거나 밝혀지지 않은 추측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흠집 내는 비난과 매도를 말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비열한 흑색선전을 마치 네거티브 전략의 일환인 양 호도하면서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있다. 아직 대통령 선거는 6개월이나 남았다. 지금까지 폭로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미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모두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을 정도인데 앞으로도 또 얼마나 우리는 가슴 철렁한 비난과 폭로를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부녀의 헌신적인 사랑을 노인과 젊은 여자의 부적절한 관계로 무조건 비난해 버리거나, 암스테르담에 멀쩡히 걸려 있는 루벤스의 작품을 푸에르토리코 국립미술관에 전시돼 있다고 잘못된 사실을 무책임하게 퍼뜨리는 것처럼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가 더 이상 없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아울러 국민도 이러한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보다는 흑색선전을 일삼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냉엄한 심판을 할 수 있는 성숙된 정치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 교수 / 바른사회 바른법제사법센터 소장) 출처 - 매일경제 2007. 7. 6 매경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