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기공식은 했지만 - 류동길
	2007-07-23
행정도시 기공식은 했지만 ‘세종시’라는 이름의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이 지난 20일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공식에서 “청와대와 정부, 정부부처 일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게 된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결과”라면서 청와대와 국회까지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 수도이전이 위헌이라는 헌재(憲裁)의 결정을 뒤집자는 발언을 또 했다. 행정도시 건설로 수도를 분할하면 행정의 비효율과 국가적 낭비, 국정운영 차질 등 문제점이 많다는 숱한 지적에 대해 “아무 문제 없다”고 우긴 게 언젠데 이제 와서 딴소리다. 수도분할의 문제점을 모르고 추진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 했다면 기만행위다. 수도이전과 행정도시 건설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억제가 목표라고 했지만 그건 명분이었을 뿐 충청표를 얻기 위한 선거전략이었다는 건 이제 온 국민이 알고 있다. 2007년 하반기 기공식, 2012년 정부기관 이전 시작 등이 모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맞춰져 있는 것도 의도적이다. 행정도시를 만들면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를 억제할 수 있다는 건 위장병을 다리수술로 고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030년까지 인구 50만명의 도시를 만든다고 해서 수도권 과밀화가 어떻게 해소될 수 있으며 그 도시가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한다면서 판교와 송파, 동탄 등에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건 앞뒤가 어긋난다. 수도권과 지척인 충청 연기·공주지역에 행정도시를 건설하면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도 억지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다며 175개 공공기관을 인위적으로 전국 각 지역에 배분한 것도 무리였다.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 그리고 혁신도시 건설은 전국 부동산 값 폭등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행정도시 건설 비용이 45조6000억원이라고 하지만 토지공사가 토지부지 조성 등에 8조원 가량을 별도로 더 투입할 계획이라는 것이 밝혀져 이것까지 합하면 모두 54조원 정도 들어간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가 들지는 가늠하기 어렵고 100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새만금사업, 경부고속철의 경우에서 보듯이 크고 작은 국책사업의 비용은 한 건의 예외도 없이 당초 예상액의 몇 배까지 늘어난 것은 엄연한 경험적 사실이다. 많은 국민들은 먹고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일본은 앞서 달리고 있고 중국은 허허벌판에 공장을 짓는데 우리는 허허벌판에 행정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행정도시만 그럴듯하게 ‘명품’으로 만든다고 잘사는 나라가 되는가. 호화스러운 사옥을 지어놓고 쓰러진 기업도 많다. 세계 대도시 수도치고 문제가 없는 수도는 없다. 지역 간 불균형이 없는 나라도 없다. 하지만 수도를 이전하거나 분할하는 선진국은 없다. 거대 도시의 문제점 때문에 강력한 분산정책을 썼던 런던, 파리, 로마가 집중을 통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일본도 수도이전을 추진했다가 중단, 도쿄의 도시경쟁력을 키워주고 있다. “수도권을 비워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논리와는 달리 초대형 도시의 경쟁력을 곧 국가경쟁력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도쿄, 오사카, 홍콩, 상하이, 베이징, 싱가포르 등과 경쟁해야 하고 이겨야 한다. 행정도시 기공식을 했다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건 아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 기업을 끌어들이거나 각종 연구기관과 대학을 유치한다면 바람직한 기업도시, 과학기술연구도시, 거대한 실리콘밸리를 만들 수 있다. 더욱이 수도권 지역에 공장용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미 수용한 땅을 잘 활용한다면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희망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현 정부에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으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조선일보 2007. 7.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