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주경쟁과 국익 - 조동근
	2002-11-14
조선 수주경쟁과 국익 산업자원부가 최근 조선업체 A사의 컨테이너선 수주가격을 상향조정하라며 내린 초유의 ‘조정명령’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산자부는 업계가 선박수주를 둘러싸고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판단돼 대외무역법에 따라 조정명령을 내리게 됐다고 한다. 이번 조정명령의 발단은, A사가 지난 10월 초 독일 함부르크-쉬드 선사(船社)측과 4100TEU급 컨테이너선을 척당 5500만달러에 수주하는 내용의 인수의향서를 체결하자 이보다 앞서 척당 5800만달러에 협상을 벌여온 B사가 “과당경쟁에 따른 불합리한 가격”이라며 산자부에 이의 신청을 낸 데서 비롯되고 있다. B사는 계약체결 단계에서 A사가 저가로 뛰어들어 상황이 반전됐다는 것이다. 물론 A사의 입장은 다르다. A사가 제시한 5500만달러는 자사 경쟁력에 기초한 것으로 결코 덤핑이 아니며, 더욱이 정부가 업계 내부문제에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주가격과 관련해서 A사는 재협상을 통해 정부의 요구대로 척당 5800만달러로 수정 계약함으로써 정부의 조정명령을 이행했다고 밝혔다. 현상만 놓고 보면 조정명령은 계약의 자유와 자유경쟁을 골간으로 하는 시장경제원칙에 위배되며, 정부에 의해 수주가격이 결정되는 선례를 남긴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 조정명령 발동의 근거인 ‘대외무역법 제43조’의 기본 취지가 공정거래를 교란시키거나 대외 신용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수출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할 때, 재협상을 초래한 이번 조정명령은 오히려 우리 조선업계에 대한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논리를 적용하기엔 상황이 너무 미묘하다. 우선 누구를 위한 경쟁인지를 짚어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쟁을 촉진하는 이유는 그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업체가 해외 선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은 경우가 다르다. 과당 경쟁의 최대 수혜자는 우리와 무관한 해외 선사이며, 저가경쟁은 해당기업엔 일감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선 ‘제살깎기’ 경쟁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인식은 주식시장에 잘 반영돼 있다. 산자부의 조정명령이 이뤄진 후 조선주(株)들은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상식대로라면 조정명령은 최소한 A사에만은 호재로 작용했어야 한다. 이는 우리 업체간의 경쟁이 심화될 경우 선가(船價)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는 시장 평가를 반영한 것이다. 2000년에 4200만달러이던 3500TEU 컨테이너선 가격이 올 9월 3300만달러로 주저앉은 데에는 국내업체간의 과당경쟁도 큰 몫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조선산업은 유럽연합(EU)이 저가수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할 만큼 가격과 품질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A사와의 재협상에서 독일 선사가 수주처를 옮기지 않고 척당 300만달러를 양보한 것도 그만큼 우리 업체의 가격경쟁력이 높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우리 조선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하지만 중국의 추격을 감안할 때 조선업계의 호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경쟁력을 가진 동안만이라도 조선업계는 국익차원에서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을 추동하는 경제논리의 이면에 ‘국익 추구’가 존재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경제이론에 ‘초점(focal point)’이라는 용어가 있다. 오랜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이심전심으로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조선시장에서 부딪치면서 오랜 경쟁관계를 유지해온 조선업체도 이심전심의 경제초점을 가져야 한다. 조선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이미지는 어느 한 기업만으로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조선업계는 국익과 기업이익을 조화시키는 전략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세계 선박 발주 시장의 위축으로 업체간 수주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저가수주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저가수주 경쟁은 공멸로 가는 길이다. 저가수주 경쟁의 자제는 공정경쟁을 해치는 담합이나 공동행위와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조선산업의 대외적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조선업계가 사는 길이다. 대외 거래에서만큼은 기업간에 ‘경쟁과 협력’의 조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소장) 출처 - 문화일보 2002. 11.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