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남말'하듯한 盧대통령 개헌론 - 박효종
	2007-07-19
'사돈 남말'하듯한 盧대통령 개헌론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집념이 각별한 것 같다. 오랜 세월 마음속 깊이 묻어둔 정든 임에 대한 일편단심과 짝사랑의 수준을 훌쩍 넘어가는 듯하다. 죽을 만하면 되살려내고 잊어버릴 만하면 끄집어내는 의제가 바로 개헌이니 말이다. 노 대통령은 제헌절 제59주년을 맞아 “우리 헌정제도 다시 손질해야 합니다”라는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헌정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취지다. 연초의 개헌 의지가 한풀 꺾인 것으로 알았는데 다시 살아난 것이다. 초조해져서 그런 것인가. 자신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함인가. 아니면 ‘그놈의 헌법’ 때문에 선진화를 위한 정치를 못했다는 의미인가. 금년 초에는 연임제를 내용으로 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들고 나오더니, 이번에는 국회의원 면책특권 및 대통령의 특별사면제한, 대통령 결선제 도입 등 명실공히 ‘멀티포인트’ 개헌을 강조하고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개헌에 대한 절박성은 같다. 왜 이렇게 처절할 정도로 개헌을 부르짖고 있는 것인가? 노 정부가 5년 단임이면서도 30년, 50년, 100년 계획 등 ‘백년지대계’를 세운 것이 한둘이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행정복합도시 건설, 지방 균형발전에 따른 공기업 재배치, 비전2030 등, 일거수일투족이 현재의 절실한 사안을 매듭짓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로드맵 작성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나 보다. 개헌을 해야만 이 모든 것의 완결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래선지 개헌을 ‘흘러간 옛 노래’로 치부하지 않고, ‘부를수록 새로워지는 노래’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제기하는 헌법 문제에 공감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사돈 남말’하는 듯한 대통령의 태도다. 헌법은 고치기에 앞서 중요한 것이 있다. 헌법을 지키는 일이 그것이다. 헌법을 잘 지키지도 않고 고치고자 한다면 순서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것이다. 과연 노 대통령은 헌법을 잘 지켰는가? 헌법을 잘 지키는 대통령의 입에서 ‘그놈의 헌법’이라는 말이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제헌절 만찬 회동을 통해 헌법재판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대통령과 같이 자리하기를 꺼린 이유는 무엇인가? 헌법정신이 투철한 대통령이라면 그와 자리를 같이하여 밥을 먹는 것이 명예일 텐데, 헌법재판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노 정부 들어와 헌법소원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도 심상치 않다.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결정을 받았는가 하면, 개정된 언론법도 부분적으로 위헌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쟁점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그 차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헌법정신을 무시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사안이다. 헌법지킴이는 대법원장이나 헌재소장의 몫이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의 몫이다. 취임 때의 대통령 선서도 바로 그 점을 확인시켜주는 사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헌법을 충실히 지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대통령이 자신의 기본권은 침해됐다고 헌법소원까지 내니 우리의 헌정질서는 어떻게 돼가는 것인지 궁금하다. 사면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이미 자신의 임기동안 특별사면을 일곱 번이나 해놓고 마치 헌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뜻대로 해놓고 헌법에다가 핑계를 대는 것은 구차스러운 일이다. 국민은 대통령으로부터 “헌법 조항이 틀렸다”거나 “헌법을 고칩시다”라는 말을 듣기 전에 “헌법정신이 중요하다”거나 “헌법을 지킵시다”라는 말을 듣기를 원한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7. 7. 1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