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종반기, 숱한 로드맵 정리해야 - 안종범
	2007-07-17
정권 종반기, 숱한 로드맵 정리해야 노무현 정부 마지막 경제운용계획이 최근 발표됐다. 집권 내내 성장률이 세계평균성장률에도 못 미쳤고, 투자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부동산 가격도 잡히기는커녕 뛰기만 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마지막 기대를 가져보았다. 그런데 역시나,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기에는 알맹이가 없다. 늘 하던 대로 부처별로 앞다투어 내놓은 사업들을 나열하는 데 불과해서 마치 표지만 바꿔놓은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달라진 것을 굳이 찾자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따른 후속 조치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남은 기간에 현 정부가 새롭게 시작할 것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 벌여 놓은 일들을 깔끔하게 청소를 하는 것이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의 유일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얼마나 청소를 깨끗이 잘 하느냐에 따라 그동안 우리 경제에 드리워 있던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을지 결정된다. 불확실성이 제거돼야만 비로소 해외로 떠났던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고, 또 쌓아둔 자본을 투자로 돌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경제도 되살아나는 것이다. 청소의 최우선 대상은 그동안 내놓았던 38개나 되는 로드맵이다. 38개 가운데서 이미 완료된 5개와 올 하반기 완료 예정인 5개를 빼고도 28개나 남아 있을 정도로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할 것은 많다. 비전2030이나 희망한국21 등 재정 소요가 막대한 것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것도 골칫거리다. 물론 정부는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서 차기 정부에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재점검하고 보완하겠다고는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엄청난 재정 부담을 다음 정부로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거의 매년 8조원 이상의 적자국채를 발행할 정도로 방만한 재정을 운용해왔고, 국가채무가 현 정부 출범 이후 2배 정도나 늘 정도로 위험 수위에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걱정은 더욱 커진다. 진정 나라살림을 생각하고 또 내년에 출범하는 새 정부가 그나마 가벼운 출발을 하게 하려면 적어도 28개나 남은 로드맵을 대폭 정리하는 것이 순리다. 꼭 필요한 몇 가지만 남긴 뒤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남은 기간 해야 할 청소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나라살림 역시 청소의 대상이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료 수입을 공제한 수지인 관리대상수지는 3년째 계속 적자이고 그 폭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잔치를 너무 자주해서 나라살림에 큰 주름이 생긴 것이다. 더구나 경제를 빨리 살리겠다고 상반기에는 예산을 조기집행하고 하반기에는 경제가 살지 않으면 추경을 편성해서 모자라는 예산을 확보하는 일도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하반기 경제운용에서도 어김없이 상반기 조기집행에 따른 후속 대책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다음 정부에 엄청난 빚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나라살림 구석구석 새는 데가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청소의 또 다른 대상은 각종 규제다. 규제개혁은 매번 발표한 경제운용계획에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규제는 국내 기업이나 외국 기업이 투자를 선뜻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이다. 특히 수도권 규제는 속 시원하게 풀릴 것이라는 신호조차 감지가 안 돼서 기업은 그냥 손놓고 보고만 있는 상황이다. 진정 현 정부가 청소를 잘 해서 차기 정부에 넘겨주려면 수도권 규제를 포함한 각종 규제를 기업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완화해야 한다. 청소론이 지금 시점에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꺼져가는 성장동력을 하루라도 빨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불순물이 붙어 있는 지금의 성장엔진을 제대로 닦아내서 다시 힘차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성장엔진은 재정이라는 연료를 충분히 확보해 둘 때 비로소 오래오래 힘차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7. 7. 1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