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님이 두들긴 신문고 - 강경근
	2007-06-23
나라님이 두들긴 신문고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헌법소원은 법률 등이 정하는 통상적 권리구제의 방식으로는 그 침해받은 권익을 구제받지 못하는 ‘국민에게’ 인정되는 예외적·보충적 성격의 최후적·비상적 권리구제수단이기 때문이다. 관아(官衙)들에 시달리다 못한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나라님에게 직접 그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게 두드리도록 한 현대판 신문고(申聞鼓)가 헌법소원인 셈이다. 그런데 국민도 아니고 백성도 아닌 나라님이 ‘백성의 이름으로’ 신문고를 쳤다. 공권력의 상징인 대통령이 ‘노무현’ 개인의 이름으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국민이 공권력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 헌법소원인데 공권력이 공권력을 상대로 한 이런 식의 심판 청구는 ‘공권력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본질로 하는 헌법소원의 제도를 근본에서부터 무시하는 헌법침해 행위이다. 우선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 기재된 청구 취지부터 요령부득이다. “피청구인(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청구인(노무현)에 대하여 한 2007년 6월7일자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준수 요청’ 조치 및 같은 달 18일자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준수 재촉구’ 조치는 청구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각 취소한다는 결정을 구합니다”인데,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다. 중앙선관위는 분명히 “6월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 행한 대통령의 선거 관련 발언” 및 “노무현 대통령의 원광대 강연(6월8일)과 6·10 민주항쟁 기념사, 한겨레와의 인터뷰(6월13일)에서의 선거 관련 발언”의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였다. ‘대통령’의 선거 관련 발언에 대하여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다. ‘노무현’ 개인의 발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결정문의 제목도 ‘노 대통령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었다. 사실이지 중앙선관위는 노무현 개인에게는 감정이 없고 노 대통령에 대해서만 그것도 그 발언에 대해서만 유감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선관위가 노무현 개인에게 유감이라 하였다 하니, 헌법재판소가 무엇을 판단할 것인가. 이를 선의로 받아들여 ‘대통령 노무현’을 청구인으로 한 취지였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국가기관으로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 노무현은 헌법소원의 청구인 적격은 없다. 공권력의 행사자인 국가나 국가기관 또는 국가 사무 일부의 수행을 위임받아 행하는 공법인이나 그 기관은 원칙적으로 기본권의 ‘수범자’이지 기본권의 ‘향유자’가 되는 주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는 자는 기본권 주체로서의 국민에 한정된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지는 국가기관이나 그 일부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다.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2004년 탄핵심판에서의 헌재 결정에서 보듯, 중앙선관위의 손이 올라갈 것이다. 당시 헌재는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은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위반의 정도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할 만큼의 중대성은 없다 했을 뿐이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선거에서의 중립을 유지하여 공정한 선거가 실시되도록 총괄 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의 자유에 속한 단순한 의견 개진의 범위를 벗어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조를 한 번도 아니고 재차 위반했다. 그러니 이제 국민에게 깊이 사과하고 선거법 준수를 촉구하는 공문을 각 행정기관에 보내는 것이 순리이다. 그렇지 아니한 모든 말과 행동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반법치주의적 궤변일 뿐이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헌법학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7. 6.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