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검증과 대통령의 개입 - 박효종
	2007-06-18
후보검증과 대통령의 개입 요즘 ‘검증’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검증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나 ‘매직워드’라도 되는지 평소에 하고 싶었으나 차마 할 수 없었던 온갖 비열한 일들을 거리낌없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비올 때 산업폐수를 몰래 방류하듯, 비방하고 싶은 사람은 비방을, 복수하고 싶은 사람은 복수를, 한몫 챙기고 싶은 사람은 한몫을 단단히 챙기겠다는 작태가 두드러지니 말이다. 아무리 대통령선거가 물불 가릴 수 없는 사생결단의 경쟁이라지만, 그 경쟁에도 정치적 도의나 신의는 있어야 한다. 그리스 시대의 스파르타인들은 전쟁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등을 보일 때 찌른다든지, 마실 물에 독약을 타는 행위 등을 비열한 짓으로 생각했다. 장갑보병들이 당당하게 마주보고 싸우는 것만을 정당하다고 했을 뿐, 그렇지 않고 화살로 쏜다든지, 매복해서 몰래 공격하는 것조차 불의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최근 검증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당당하게 나서기보다 저격수들처럼 비겁하게 행동하고 있다. ‘신사’가 무엇인지, ‘예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로마 역사를 보면 황제 검투사가 나온다. 코모두스가 바로 그다. 그는 ‘철인황제’로 평가받던 전임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는 달리 자유분방해서, 스스로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과 겨루기를 즐겼다. 300번 이상 경기를 했는데, 항상 연전연승이었다. 그 승리의 비결은 간단했다. 바로 황제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떤 간 큰 검투사가 감히 황제를 이기려 들 것인가. 그래서 그런지 코모두스는 로마 최고의 검투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한국판 황제 검투사일까? 공무원 중립을 규정한 선거법을 위헌이라고 하지 않나, 헌법소원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나, 한편 기자실 통·폐합을 강행하면서 언론인들과 토론회를 갖지 않나. 이번에는 급기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의 대변인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임기중 형사소추를 받을 수 없는 특권이 있는데, 상대방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을 했다고 칼을 휘두르니, 황제의 특권을 즐긴 코모두스와 다를 게 뭔가. 5년단임제는 정권 재창출에 연연하지 말고 국정에 전념하라는 헌법정신이 담겨 있는 제도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집권을 끔찍하다고 하는 걸 보면, 검증이라기보다 선거 개입이고 검증을 정략화하는 처사다. 축구에서 심판을 보는 사람이 선수로 뛰기도 하다가 판정도 한다면, 소도 웃을 일이다. 축구심판이 누구는 반칙했다고 호루라기를 불다가 정작 어느 한 팀을 위해 공을 차기도 하고 또 상대방 골대에 골을 넣으려고 한다면, 관중이 반칙이라고 외치지 않을 것인가.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이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니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가뜩이나 정치 성향이 뚜렷하고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 대통령이 나서면 검증이 아니라 흠집내기가 될 뿐이다. 그러잖아도 이명박 캠프와 박근혜 캠프가 나름대로 티격태격하며 ‘상호검증 모드’에 들어갔는데 국정에 바쁜 대통령까지 가세해서 무슨 이득이 있으랴. 일찍이 로마 사람들은 국가적 쟁점이 생기면, ‘퀴 보노(cui bono)’, 즉 ‘누구에게 이득이 되느냐’고 묻곤했다. 이제 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이 질문을 할 차례다.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해서 ‘감 놔라 배 놔라’하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선거 중립은 한국의 상황에서 선거 공정성과 통한다. 중립을 어기는 문제에서 국민이 민감해하는 이유는 공정성이 훼손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은 빼어들었던 칼을 칼집에 넣고 정상적인 ‘국정관리 모드’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7. 6. 1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