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坪'을 쓰면 과태료 물린다고? - 김정호
	2007-06-15
'坪'을 쓰면 과태료 물린다고? 다음달이면 아파트 분양 광고에서 ‘32평형’ 같은 표시 대신 ‘84.72㎡’ 같은 것을 보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평’이라는 단위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로서는 감을 잡기가 어려운 숫자다. 가격도 ‘평당 800만원’ 같은 방식이 아니라 ‘㎡당 242.4만원’식으로 불러야 할 판이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는 32평형이라는 표기 대신 32형을 쓰자는 묘안까지 백출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평’이라는 단위는 안 썼으니 법을 어기지는 않은 셈이다. 이런 소동이 생기는 것은 정부가 7월부터 ㎡와 ㎞, ㎏ 대신 ‘평(坪)’, 리, 근 같은 전통적 단위를 사용하는 업자에 대해 50만원의 과태료까지 부과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도량형을 통일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저마다 사용하는 단위가 다르면 불편할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 도량형을 통일할 수 있다면 단위가 달라서 헷갈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이상에 못 미치게 마련이며 그런 사정은 도량형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실이다. 도량형이 쉽게 통일될 수 있다면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지만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강제로 단일 표준을 강요한다면 오히려 국익을 해칠 수 있다. 특히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도로에서의 통행방식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측통행은 우리가 매우 잘 따르는 국가표준이다. 이 표준은 지키지 않으면 당장 충돌 사고가 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운전할 때마다 우측통행이라는 표준에 순순히 따른다. 역주행으로 이 표준을 어긴 사람은 수많은 타인에게 위해를 가한 것이니 그런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엄한 처벌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걸어다니는 인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인도에서 통행할 때에도 좌측통행이라는 표준은 존재하지만 초중고등학교의 복도에서나 엄격히 지켜질 뿐이다. 사람이 아주 많은 지하철 복도를 제외하고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좌측통행이라는 표준이다. 하지만 행인들이 좌측통행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과 충돌할 염려가 거의 없는 길에서 굳이 왼쪽으로만 걷는 수고를 들이라고 요구할 이유가 무엇인가. 좌측통행이라는 표준을 만든 것은 통행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아무렇게나 다니면 서로 부딪쳐서 보행속도도 줄고, 다칠 수도 있음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붐벼서 그런 위험이 큰 지하철 통로에서는 자연스럽게 좌측통행이 이루어진다. 붐비지도 않는 인도에서 좌측통행 표준에 따르지 않았다고 범칙금을 부과한다면 통행자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좌측통행 제도의 본말을 뒤집어 놓는 일이다. 이런 원리는 도량형의 경우도 다를 것이 없다. 평을 써서 지금까지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로 바꾸어서 나타나는 혼란이 크다면 인도에서의 좌측통행을 강요하지 않듯이 척관법을 쓰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 표준제도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그것 때문에 정말로 큰 불편이 따른다면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업계에서 스스로 도량형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생겨날 것이다. 정부는 그때 가서 약간만 도와주면 된다. 대부분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별문제 없이 쓰고 있는 ‘평’을 ㎡로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소비자의 이익을 위한 것도 산업발전을 위한 것도 아니다.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표준이 좋은지도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선택되도록 놔두는 것이 현명하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7. 6. 1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