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 존재 이유 있나 - 손태규
	2007-05-31
국정홍보처 존재 이유 있나 국정홍보처가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이른바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때문이다. 국가 비상사태시의 언론 통제 방법을 방불케 하는 이 방안은 국정홍보처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대한 강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나라당은 아예 국정홍보처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열린우리당도 폐지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비판의 핵심은 국정홍보처가 국가와 정부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권을 홍보한다는 것이다. ‘홍보’란 단어에는 음험한 이미지가 풍긴다. 홍보란 언론이 좋은 것만 보도하도록 해 국민들이 기업이나 정부를 훌륭하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정직과 솔직함보다는 가공과 포장, 유인의 능력이 돋보이는 것이 홍보다. 기업만 홍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부도 당연히 홍보가 필요하다. 보도 통제, 이미지 관리, 상징 조작 등은 어느 민주국가에서도 정부의 일상적 행위다. 그러나 정부 홍보는 엄밀히 말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자기 목적을 위해서다. 주인인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하는 일의 모든 것을 소상하게 보고해 정당하게 심판받겠다는 착한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잘 없다. 오로지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보도를 통해 국민 여론을 개선시키고, 국회 내나 전국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정치적 반대자들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쥐고, 정치체제의 중심에서 그들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자기 보존의 목적 때문에 정부는 홍보를 하는 것이다. 정부 홍보는 결코 국민의 알권리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판받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대통령과 정권의 정책을 세일하고, 대통령과 정권의 이념을 전파하는 선전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정홍보처와 같이 정부 홍보를 중앙집중식으로 관리하는 기구를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정홍보처는 파란만장한 현대 정치사만큼이나 굴곡 많은 역사를 갖고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한때는 사라졌다가 또 다른 이름으로 부활하는 기구한 운명을 지녔다. 국가 홍보의 기수가 아니라 정권의 하수인이란 낙인 때문이었다. 독재 정권은 체제 선전, 언론 장악의 첨병으로 공보처 등을 활용했다. 민주화 정권도 예외는 없었다. 그렇게 언론자유를 외치던 민주화 인사들도 정권을 잡기만 하면 언론 장악을 맨 먼저 서둘렀다. 비판을 업으로 삼던 그들도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은 참기 어려웠던 것이다. 국정홍보처와 같은 기구는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다. 전쟁 정책 수행을 위한 국민 여론 결집을 위해 영국은 ‘정보성’을, 독일과 일본은 ‘선전성’을 각각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자 이들 나라는 각 정부 부처가 홍보를 책임지도록 하고 정보성이나 선전성을 없앴다. 현재 국정홍보처와 같은 중앙정부 기구가 있는 나라는 대부분 민주주의가 덜 발달한 나라다. 미국에서는 최근 각 부처 홍보 활동조차 세금을 들여 국민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책을 팔기 위한 선전 행위나 일삼고 언론 보도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미국은 정부 기관이 선전 전문가를 고용하는 비용을 지출하지 못하도록 하고, 일방적인 선전성 홍보에 대한 예산 사용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개별 정부 기관의 홍보 활동도 엄격히 제한하는 나라가 있는 마당에 한국의 국정홍보처는 그 존재만으로도 무리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선진국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대통령 개인이나 선전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는 방안 마련에 세금을 사용하는데 이르러서는 그 용도가 무의미하다. 국정홍보처는 스스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타의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부 / 바른사회 바른언론포럼 회장) 출처 - 국민일보 2007. 5.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