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정당이 있다니! - 한영탁
	2002-11-07
세상에 이런 정당이 있다니! 대통령선거를 한달 남짓 앞두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사분오열(四分五裂)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자기들이 뽑은 노무현 대선후보로는 아무래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정권 재창출 고지를 점령할 수 없다고 믿는 소속 국회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소속으로 있다가 ‘국민통합21’이라는 당을 급조하여 당대표 겸 대선후보로 나선 정몽준과 손잡고 후보를 단일화하지 않으면 절대 대선에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 당을 떠난다는 것이다. 당을 떠나긴 떠나야겠는데 탈당하면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니 당에서 쫓아내 달라고 출당(黜黨)을 조르는 전국구 의원님들로 있다니 가관이다. 탈당은 했으나 민주당 몫으로 차지한 국회 상임위 위원장 자리는 내놓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우물대는 의원들도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의원직 놓치지 않으려고 “나 쫓아내 주오” 이런 저질들을 선량이라고 믿고 박봉에 쪼들리면서도 꼬박꼬박 세금을 바친 우리네 불쌍한 서민의 처지가 서글프다 못해 분노가 치밀고 욕지기가 난다. 새천년민주당 안에는 노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대책위쪽 사람들이 있나하면 최고위원이란 정상급 지도자를 포함한 반노파(反盧派)도 수두룩하고 노 씨한테 경선에서 패배당한 이인제파(派)도 있다고 한다. 당의 지도체제도 이원화(二元化)되어 있다. 선거대책위와 한화갑 대표최고위원이 버티고 있는 당최고위원회가 그것이다. 심지어 여남은 명으로 구성된 대변인단도 대표최고위원계와 선대위계가 갈라져 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다. 모두가 36개 방향으로 각개 약진하고 있으니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란 인상이다. 노벨평화상에 그 이름도 빛나는 김대중 선생이, 이른바 인권 대통령이 만들고 공들여 가꾸어온 정당의 꼴이 참말로 말이 아니다. 정당의 머리에 ‘새천년’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나온 정당이 그래도 20년쯤은 버티어야지, 2년도 미쳐 못가서 이런 지리멸렬상(支離滅裂相)을 보이다니 어디 될 말인가! 대선후보를 공식적으로 지명했으면 그 사람을 도와서 경쟁당 후보와 멋진 한판 승부를 하도록 밀어줘야지 여론조사에서 밀린다고 금방 용도폐기하고 다른 말<馬>을 구한다고 법석이니 관전하는 국민들 보기에도 딱하고 한심할 뿐이다. 사상 첫 국민 대통령 후보랄 때는 언제고 노무현 후보가 총득표 72.2퍼센트라는 압도적 지지로 경선 고지를 점령했을 때, 새천년민주당 사람들은 “역사상 첫 국민 대통령 후보”가 태어났다고 떠들어댔다. 선거인단에 미국식으로 당원과 비당원인 일부 일반 국민들을 참여시킨 경선을 함으로써 “이제까지 국민이 외면해온 정치를 제 자리로 복원시키고 참여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쾌거”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하던 사람들이 바로 민주당 사람들 자기네가 아니었던가? “믿음직한 정당, 새로운 정치문화 창출의 현대적 정당”, “지역, 세대, 계층, 성별 등 사회를 아우르고 통합하는 정당”이라는 자랑은 어디로 갔나? “참여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경선에서 뽑은 국민 대통령 후보”를 하루아침에 그렇게 헌신짝 버리듯이 내버리는 게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는 현대적 정당”인가? 이런 졸렬 무쌍한 인간들을 두고 정치도의를 지켜야 한다는 따위 말을 운위한다는 건 정말 ‘정치도의’란 말을 오염시킬까 두렵다. 벼랑에서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도 의연한 낙락장송처럼 믿음직하고 솔직하고 잔꾀 부릴 줄 모르고 어딘가 기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그런 의젓한 정치인들을 우리는 가질 수 없을까? 오늘날 시정잡배보다 못한 정치인을 지도자로 모시게 된 우리의 불행은 우리들 자신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그 점을 깊이 반추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본다. 한영탁 (칼럼니스트. 영덕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 시민회의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