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위주 정책으론 일자리 못 만든다 - 김태기
	2007-05-18
규제 위주 정책으론 일자리 못 만든다 우리나라는 고물가 국가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3분의 1 정도지만 물가는 미국의 95% 수준이다.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학생들마저도 수학여행을 해외로 나가 국내 관광서비스산업은 텅 비는 공동화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 국민이 해외관광에 쓴 돈은 137억달러이고 벌어들인 돈은 52억달러로 관광수지 적자가 85억달러에 이른다. 관광객 숫자도 해외관광에 나선 우리 국민은 1160만명인데 비해 한국을 찾은 외국관광객은 615만명으로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관광산업의 이상 징후는 웬만한 사람도 피부로 느낄 수 있지만, 눈에 덜 띄는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은 더 심각하다. 대규모 제조업체가 투자처를 외국으로 돌리니 노동조합이 해외 투자를 반대하는 투쟁까지 벌이고 있다. 2000년 말 우리나라의 해외 투자 잔액은 국내총생산(GDP)의 5.8%로, 소득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일본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방치한 결과 제조업의 해외 이전은 더욱 가속화했다. 이제는 섬유 등 경공업만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중화학 기업들까지 해외로 대거 나가고 있다. 이 바람에 올해 해외투자 잔액은 GDP의 1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공동화의 이유로 대립적 노사관계뿐 아니라 높은 공단의 부지 가격, 비싼 물류 비용 등도 지적돼 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얼마 전에 발표한 공장설립 규제에 대한 보고서는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 공장을 새로 지으려면 35개의 규제가 적용되고, 수도권의 경우 4개가 더 늘어나 39개나 된다고 한다. 입지선정 단계에서 21개의 규제를 통과하고 공장설립 인·허가 단계에서 18개를 통과해야 한다. 규제는 공급을 줄이고 시간이나 비용 부담은 늘려 생산비용을 높인다. 이것은 결국 소비자는 비싸게 제품을 구입하게 만들고 기업의 고용창출 역량도 떨어뜨린다. 제조업이 이렇게 ‘푸대접’ 받는다고 해서 서비스산업의 처지가 나은 것은 아니다. 고용유발효과가 크고 부가가치도 높으며 외화까지 벌어들여 성장산업으로 평가되는 관광서비스산업도 마찬가지다. 불합리한 각종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호텔의 객실료는 선진국보다도 비싸다. 호텔의 사업용 토지에 대해서도 보유세가 적용되고 이같은 부담은 객실요금으로 전가되게 마련이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한 나라의 산업이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커진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소비활동이나 생산활동이 국내로 한정되지 않고 지구촌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잘못된 규제정책은 국내 산업을 망치는 자살골과 같다. 우리나라는 국가부채가 지난 4년 사이에 2배나 늘었고 국가예산에서 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1 정도로 늘어났다. 이는 우리 경제가 구조적 불황에 빠지기 쉽다는 의미다. 이러한 국내외 상황을 돈 안들이면서 효과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규제개혁에 있다.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를 폐지하면 기업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 민간부문의 창의를 제고해 새로운 성장산업을 키울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이 1980년대 불황을 극복하고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고실업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감한 규제개혁이었다. 10년 불황에 시달렸던 일본 경제가 2000년대 들어 5년 이상 경기가 연속 상승하는 이유도 규제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규제정책은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한국은 지엽적인 규제를 개혁하는 데 매달리고 있지만, 일본은 대기업집단 규제완화와 수도권 규제폐지 등 핵심적인 규제를 개혁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규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대처 총리가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규제를 생산하는 관료와 규제를 이용하는 이익집단의 압력을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7. 5. 1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