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성수대교를 생각한다 - 한경구
	2002-11-02
다시 성수대교를 생각한다 지난 10월 21일은 지금부터 8년 전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이다. 많은 사람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드디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좋아하던 한국인들은 엄청난 슬픔과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그 후 다리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지만 대형 사고는 그치지 않고 있다. 혹시 우리 사회의 대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고가 나자 모두 "왜 다리가 무너졌는가?"를 물었다. 여론과 정치권은 부실을 저지른 건설회사와 이를 눈감아준 공무원들을 비난했으며, 종교계 인사들은 온 국민의 도덕적 재무장을 촉구하기도 했다. 매스컴에는 연일 토목공학자들이 나와서 트러스 공법이 어떻고 감리가 어떻고 하면서 토론을 벌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전문가들에게 "그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비난도 제기됐다. 그런데 사실 성수대교 문제는 인문사회과학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다리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실질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 이는 사회문화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설하던 시기에 부실 공사가 매우 심했으며, 설계 하중을 초과하는 차량들이 함부로 건너다녔고 또한 보수 유지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고 발생 훨씬 전부터 매스컴에서도 한강다리가 위험하다는 보도를 여러 차례 했으며, 청와대에서도 특별 점검 지시를 여러 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속됐던 현장 관리자들 또한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므로 사진까지 첨부해 보수 조치의 필요성을 상부에 보고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렇게 다리가 위험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리가 무너질 때까지 무엇을 했는가?" 또한 "왜 우리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대형 사고가 일어나면 상당수 전문가들이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라고 이미 그 위험성을 지적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매스컴이 이미 보도한 경우도 있다. 관계공무원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니 정말로 답답하고 또한 무서운 일이다.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일을 당하게 되다니…. 우리는 "왜 아무런 실질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본질적으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는지, 무엇이 담당 공무원들을 복지부동으로 만들었는지?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난 뒤에 떠돌던 '괴담'이 있다. 구청 공무원들에게 관내의 모든 대형시설물의 안전을 매일 점검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높은 분의 지시가 내렸다나? 졸지에 남산터널을 담당하게 된 어느 말단 공무원, "○월 ○일, 맑음. 해당 시설물을 육안으로 점검했으나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 못함. 다만 시설이 노후했고 차량 통행량이 과다하므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전문가에 의한 정밀점검과 이에 따른 보수조치가 요망됨"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고…. 이러한 '괴담'을 사명감 없는 공무원의 기회주의라 웃어 넘기지 말자. 문제 발생을 경고하는 휘슬을 불고 예방조치를 취했다가는 "공연히 사서 고생하고" 윗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며 주변에 적을 만들기 십상이란다. 가만히 있다가 문제가 터진 다음에 재빨리 수습을 잘하는 사람이 조직에서 출세하는 분위기가 아닌지 살펴보자. 현장 책임자들이 사고 직전에 심각한 징후를 포착했다고 한들, 과연 교통대란을 무릅쓰고 통행을 중지시킬 수 있었을까?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토목 기술의 부족이나 정보의 부재로 발생한 토목공학적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개연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 정보를 무시하고 필요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문화적 이유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외환위기를 맞이한 것 또한 우리 사회가 여러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처해왔기 때문은 아닐까? 다시 성수대교를 생각하며 묻는다. "왜 문화인가?" 韓敬九 (국민대 문화인류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11.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