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적인 생보사 공익기금 비판 - 조동근
	2007-04-17
소모적인 생보사 공익기금 비판 빌 게이츠는 1990년대가 ‘재(再)구축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라고 했다. ‘속도의 시대’에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인간의 신경계와 비슷한 ‘디지털 신경망’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신경계를 기업이 보유할 때, 위기 상황이나 기회에 재빨리 대응하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어 고객의 요구 변화에 상호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경쟁력을 결정하는 ‘생각의 속도’는 국가경쟁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책의 속도’가 국가경쟁력이기 때문이다. 18년째 끌어 온 생보사 상장 문제는 ‘정책의 속도’에 투영된 국가경쟁력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보사 상장이 이처럼 지체된 것은, 갈등을 조정하는 원칙을 분명히하지 않아 ‘이해관계자의 이해 반영’이라는 포퓰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보사협회는 상장을 전제로 4월6일 상장에 따른 차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22개의 생보사가 참여하는 1조5000억원의 공익기금 조성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기금은 지정기부금의 ‘손비(損費) 인정 한도’ 내에서 생보사별로 기부 여력을 감안해 차등 비율을 출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기금 출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기금 출연은 상장 논란을 비켜 가기 위한 ‘편법’이라는 것이다. 감독 당국이 업계와 타협함으로써, 생보사 성장 과정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보험 계약자를 외면하고 “상장 차익을 보험계약자에게 배분해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것이다. 즉, 공익기금은 ‘상호회사 성격’을 부정한 대가로 낸 돈이며, 보험계약자들의 대부분이 경제적 약자임을 감안할 때 약자의 이익을 보호해줘야 할 감독 당국이 약자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반대 논리는 보험 계약자의 지위에 대한 논쟁을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보험 계약자는 소비자로서 계약을 통해 보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따라서 보험 서비스 구매는 보험사에의 투자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자는 주주가 아닌 채권자의 지위를 갖는다. 또한 유배당 계약자에 대한 배당이 충분치 않았다는 객관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공익기금을 ‘상호회사’의 성격을 부인한 대가로 낸 돈으로 볼 이유는 없다. ‘계약자 기여’ 부분은 차라리 진부하기까지 하다. 이 세상의 모든 기업은 ‘고객 돈’으로 생존해 가며 이익을 낸다. 보험은 특정 상황에서 특정 조건의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상품화한 것이다. 계약자가 보험료를 내고 약속을 사고 약속이 원래대로 지켜지면 계약은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기업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 계약자를 경제적 약자로 치부할 이유는 없다. 또한, 상장 이익은 그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자본을 투여한 후 회사를 잘 관리하고 키워온 주주들과 경영진에 대한 보상이다. 아무나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성공 보수’는 정당화된다. 또 다른 비판은, 미래의 보험계약자가 낼 돈으로 실현할 이익을 전제로 거액의 공익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이익이 나면 우선 보험료를 내리거나 계약자에게 배당하고, 그래도 이익이 남으면 주주 몫에서 기금을 출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익의 처분은 주주의 몫이며, 보험료 인하와 배당은 기업 전략의 문제다. 공익기금이 계획대로 잘 조성되는지 여부만을 따지면 된다. ‘꼼수’는 부정적 시각에서의 해석일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보험사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비상장 상태로 외국계 보험사와 경쟁할 수 없기에, 상장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삼성·교보·대한’의 빅3 생보사는 자산 규모에서 10위 이내의 금융 대기업이다. 연못 속에 고래를 가둔 것이다. 자본시장 발전과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상장은 매듭지어져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 출처 - 문화일보 2007. 4. 1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