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줄어든다면 - 사공일
	2002-10-28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기근이 든 마을 주민들이 이웃의 돼지를 기르는 집으로 쳐들어갔다. 돼지를 보호하기 위해 돼지 주인은 총으로 마주섰다. 총소리에 놀란 돼지들이 날뛰어 총질에 방해가 되자 화가 난 돼지 주인은 자기가 보호하려던 그 돼지들을 밖으로 차내 버리고 총질을 계속하는 데 몰두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이 돼지 주인처럼 목적의식을 망각한 짓을 할 때가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물적. 정신적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일이 국가정책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그 손실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주5일 근무제'를 조기도입하는 중소기업에 보조금까지 지급하겠다는 대책을 며칠 전에 내놨다. 과연 정부는 '돼지 주인의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주5일 근무제' 도입 문제를 다시 한번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주5일 근무제' 조기도입으로 상당수의 중소기업과 국가가 적어도 단기적으로 안게 될 부담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현행 법정근로시간과 실 근로시간 간에 존재하는 10시간 이상의 괴리가 더욱 늘어나게 돼 초과근로 법정한도를 넘게 될 경우 생산축소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법정한도 내의 연장근로에 따르는 추가 부담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주5일 근무제'와 관련된 논의는 주로 이 첫째 측면에 집중돼 온 것 같다. 주5일근무의 또다른 부담 그러나 지금까지는 논의의 주대상이 되지 않은 더욱 중요한 또다른 부담이 있다. 즉 단순한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이 아닌 '토요일의 사실상 법정 휴일화'에 따른 기업의 추가부담과 노동시장의 경직화에 따른 국민 경제적 부담이다. 제조업 뿐 아니라 다른 업종의 기업도 주말에 일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법정근로시간 이내에서는 노사합의에 따라 기업의 추가 부담 없이 주말에도 일하고 주중에도 쉴 수 있는 유연한 근로제도가 바람직하다. 오늘날 우리는 무한경쟁의 고객위주 경영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유연한 근로제도를 통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고 소비자의 편의에 부응할 수 있을 때 기업이 살아남고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다. 더욱이 우리 기업이 외국으로 덜 떠나게 되고 외국 기업이 더 들어오게 된다면 일자리는 그 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현재 미국 경제가 유럽 경제보다 잘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노동시장의 상대적 유연성을 드는 것이 보통이다. 일부 유럽국가는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나눠 갖는 시책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번 경직화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사실을 우리는 독일을 포함한 이들 유럽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제 우리 국민 소득도 상당한 수준에 와 있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가를 선호하는 사회적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도 정부가 앞장서서 서두를 것이 아니라 법정근로시간과 실 근로시간 간의 괴리가 좁혀지는 추세와 노사간 합의에 따라 적절한 속도로 조정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오늘날의 선진국과 같이 근로시간 단축은 자연적으로 토요일 휴일화로 진전될 것이지만 토요일을 법정 휴일화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가야 모든 국가경제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온 국민의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일자리와 근로자들의 소득향상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경제성장이란 중간목표의 달성을 통해 이룩될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취해진 시책이 오히려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실업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주5일 근무제' 아닌 '근로시간 단축'도 노사간 합의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중앙일보 2002. 10.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