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여전히 '규제大國' - 김종석
	2007-03-23
한국은 여전히 '규제大國' 김종석 홍익대교수·경제학 지난 19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한국의 지난 5년간 규제개혁성과를 평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OECD는 보고서에서 한국이 최근 몇 년간 ‘강력한 정치적 의지’로 인해 규제개혁에 상당한 진전을 보였으며 ‘한국은 규제개혁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무리 외교적인 수사(修辭)라 해도 국내 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은 OECD의 이런 평가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5년 사이 한국 정부의 규제 상황은 누가 보아도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규제개혁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 5년은 규제개혁이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규제 수준과 내용 면에서 가장 악화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시장기능에 대한 불신과 정부기능에 대한 과신(過信), 그리고 공익은 정부만이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미신에 빠진 현 정부의 정책노선이 있다. 현 정부는 취임 이후 좌파적 정책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할당제며 의무고용제, 인가·면허제, 등록제, 거래허가제, 가격상한제, 투자규제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반(反)시장적이고 강압적인 정부규제를 도입했다. 지금도 정부는 이런 방식의 고비용·저효율 규제를 도입하는 데 아무런 부담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지역균형발전, 투기억제, 재벌규제, 환경보호, 비정규직 해소를 위한 규제는 목적이 정당하므로 무슨 수단이든지 정당화된다는 단순논리로 규제 수단과 내용의 적정성을 따지지 않고 마구 도입되고 있다. 최근까지도 이자율 상한제, 분양가 규제, 아파트 원가공개와 같은 불량규제들이 계속 도입되고 있다. OECD 보고서가 언급한 규제개혁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규제개혁이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는 도대체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그러나 OECD의 보고서에서 규제영향 분석을 더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든지, 의원입법에 의한 규제의 품질관리가 필요하다든지 하는 권고사항은 귀기울여야 할 내용들이다. 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의 규제가 심하다고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는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규제의 내용과 절차, 그리고 집행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규제가 저질이고 준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기업환경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문제가 한국의 ‘규제 리스크(위험도)’가 크다는 점이다. 정부규제가 국민정서와 정치논리에 영향을 받아 예측하기 어렵고, 기업투자의 위험도를 높여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규제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998년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해서 지금까지 규제 총량관리와 품질관리를 해왔다. 사실 이런 한국의 규제개혁 시스템은 OECD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모범사례로 다른 나라에 권고하는 우수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아무리 엔진이 강력해도 운전이 미숙하면 제 성능을 낼 수 없다. 우수한 규제개혁 시스템을 갖추었음에도 아직도 한국이 ‘규제대국’이고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이 제도가 부실하게 운영되었음을 의미한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법에 규정된 기능과 권한만 제대로 행사해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공동위원장인 국무총리가 위원회에 관심만 보여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이제라도 규제개혁위원회가 국민정서나 정치논리, 이익단체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규제개혁 원칙에 어긋나는 불량규제의 도입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여론의 역풍 속에서도 ‘이건 아니오’라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규제개혁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종석 (홍익대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07. 3.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