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포퓰리즘으로는 나라 못 지킨다 - 제성호
	2006-12-27
안보 포퓰리즘으로는 나라 못 지킨다 지난 21일 민주평통 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쏟아낸 군대 비하 발언들이 지금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전직 군 고위 장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26일 재향군인회는 노 대통령의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 한다. ‘군대를 (젊음을) 몇 년씩 썩히는 곳’으로 매도한 것은 국군 최고통수권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실언이었다. 병역의 의무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부모형제와 이웃의 생명, 나아가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신성한 것이다. 병영생활을 허송세월로 깎아내린 것은 군 복무기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며 험난한 인생살이에 큰 보탬이 됐다고 믿는 대다수 예비역 병장들의 생각과도 맞지 않다. 군 통수권자로선 연말을 맞이해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는 것이 더 옳았을 것이다. ‘그 많은 돈을 군인들이 다 떡 사 먹었느냐’는 군대 폄하 발언 역시 부적절했다. 그간 우리 군은 밤잠을 자지 않고 피땀 흘린 결과 오늘의 강군을 만들 수 있었다. 막대한 군비는 대부분 전투력 유지·증강에 쓰였다. 그런 와중에 전직 군 수뇌부는 조국에 충성한 죄(?)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전시 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단독행사)를 반대한 전직 국방장관 등을 향해 ‘거들먹거리고’ ‘줄줄이 몰려가 성명내고’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운운한 것은 막말의 극치였다. 이는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노병들의 충정과 평생을 군사업무에 종사해 온 전문가들의 식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내친 것이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전작권 환수 반대 인사 중에는 독재정권 앞잡이 혹은 광주사태 진압 가담자가 있다는 등 ‘코드 발언’을 토해냈다. 이 같은 언사는 서로 무관한 사안을 억지로 연결시켜 일반 국민의 인식과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정치적 술수로 보인다. 사실 전작권 환수의 본질은 한미동맹으로 대표되는 안보협력을 외세 의존으로 규정해 세계 제1일의 연합작전체계를 갖춘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자주국방’이란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려고 국방개혁 아닌 ‘국방 흔들기’에 무려 620조원을 퍼붓는 것이다. 정부가 잘못된 길을 가려 할 때 이를 견제하는 것은 퇴역한 후에도 ‘안보 지킴이’란 본연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려 한 군인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작 직무유기를 한 사람은 멀쩡한 안보 시스템을 흔들어 대려 한 대통령 자신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은 우리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1998년 12월19일자 노동신문 5면에 실린 화보는 북한의 미사일이 명백히 서울을 타격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2002년에 나온 북한의 책자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이 사실을 왜곡한 셈이다. 그럼에도 감성에 호소하는 ‘안보 포퓰리즘’은 계속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노 대통령의 군복무기간 단축발언이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청와대는 ‘유급지원병제’ 추진을 들고 나왔다. 병역 단축문제는 북한 핵실험 등 급변하는 안보환경, 미래 병역자원의 수급과 전투력 유지 가능성, 국민정서, 예산 조달방안 등 다각적인 고려가 요구된다. 결코 졸속으로 대처할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벌써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길게는 6개월 정도 복무기간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로 당장 내년부터 입대 연기사태 등 병역질서에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예기다. 혹여 병역기간 단축을 대선 표심으로 연결하려는 꼼수를 쓰려 해선 안 될 것이다. 안보는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틀거지다. 따라서 정치적 이용은 금물이다. 아무쪼록 ‘대중 영합주의’ 대신에 ‘안보 전문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12. 2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