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 함인희
	2006-11-27
고령화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요즘 미국은 ‘그레이 아메리카’란 애칭을 얻었다.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2005년 환갑을 지나게 되면서 얻은 별명이다. 베이비 부머(baby boomer) 가운데 10명 중 1명은 100세까지 장수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도 2015년이 되면 1955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60세 환갑에 접어들게 된다. 앞으로 9년 남았다. 그런데 우리 상황은 미국보다 절박한 측면이 있다. 미국은 현재 출산율 2.0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1.08 수준으로 급락했기에 ‘출산파업’으로 인한 부양비 부담이 그 어느 국가보다 심각하다. 유엔은 2050년에 이르면 한국의 고령화율이 세계 1위로 부상할 것이란 추계를 내놓고 있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인한 연령 혁명(age revolution) 결과 머지않아 4세대 및 5세대 공존 사회로 진입하게 되리라는 인구학자들의 예측도 예사롭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새로마지플랜2010’ 등 고령사회에 대비한 다양한 청사진을 펼쳐 보이고 있으나 표류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거리를 활보하는 이 5명 중 1명이 60세 이상인 사회는 인류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진정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출발할 것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노년기 이미지와 관련해서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노년기 이미지는 은퇴로 인한 역할 상실, 배우자 사별로 인한 정서적 고립, 노화로 인한 건강의 위협,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부양의 대상이란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측면이 부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구를 중심으로 노년기야말로 생애주기상 그 어느 단계 못지않게 역동적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로서, 자아 정체성 및 관계성 전반에 걸쳐 의미심장한 변화를 초래하게 됨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유럽에선 노년기의 성과 사랑이 새로운 연구 주제로 부상하면서 배우자 혹은 파트너의 존재 유무 자체가 노년기 삶의 질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다. 그 결과 기혼남성노인이 노후의 재정적 상황 및 사회적 역할, 사회적 관계망 등에 있어 가장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기혼여성노인이 그 뒤를 잇고 있는 반면, 사별이나 이혼으로 인해 홀로 된 남성노인의 삶의 질이 가장 열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노인정책도 노년기의 생애주기적 특성을 충분히 고찰하는 동시에 노인집단 내부의 다양성에 주목하여, 지금까지 초점을 맞추어왔던 경제적 지원 및 건강 지원 못지않게 정서적 지원 및 사회적 지원을 다양하게 제공해야 하리라 생각된다. 현재 노인들 대다수의 최대 관심사가 ‘노후를 누구와 함께할 것이냐’로 모아지고 있음도 주목의 대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구에서 진행되었던 ‘연령분절적 유료시설(paid-care) 모델’이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실제로 65세 혹은 70세가 되어 실버타운에 거주하게 된 노인들은 자신이 가족 및 친지들로부터 고립된다는 사실, 더불어 늘 누군가의 죽음을 접해야 한다는 현실로부터 예기치 않았던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향후의 부양모델은 ‘연령통합적’이면서 가족의 장점과 사회 복지 시스템의 장점을 결합한 일종의 ‘노후 공동체’ 모델을 지향해야 하리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서구의 유수 기업에서 친가족 정책의 일환으로 직원들의 노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도입한 결과 조직 만족도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이직률은 하강곡선을 그렸다는 보고가 있다. 이제 노인정책도 현실적합성이 높은 정책 개발을 위해 정년연장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더불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모을 때인 것 같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바른사회 정책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6. 11. 2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