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도발 묵살’ 의혹, 누구 책임인가 - 한영탁
	2002-10-09
‘북 도발 묵살’ 의혹, 누구 책임인가 6. 29 서해교전 직전 북한 해군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5679부대 정보보고의 삭제, 누락 파문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더욱이 파문의 관련자들이 서로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어 누구 말이 맞는지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북 도발보고’ 삭제, 누락 파문의 진원지로 보직 해임된 군 대북 감청부대장 한철용(韓哲鏞) 소장은 지난주 국방위 국정감사에 이어 7일 일부 언론 인터뷰와 비망록을 통해 국방장관의 지시로 특수첩보(SI)가 삭제, 축소되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동신(金東信) 당시 국방장관은 그 같은 정보보고를 받은 적도 내용의 수정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합참 정보본부 정보융합실장 정형진(丁亨鎭) 준장은 “그런 내용을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한 적은 있지만 장관이 삭제를 지시한 적은 없다”고 국감장에서 증언했다. 이준(李俊) 국방장관의 국회 증언엔 이런 주장들과 미묘한 차이가 발견된다. 감청부대의 보고에는 “북측의 단순 침범 가능성부터 도발 가능성까지가 모두 열거돼 있어 김장관이 ‘받아보는 부대에서 혼선이 있을 수 있으니 합참 정보부서에서 다시 정리해 보고하라’고 질책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감청부대는 6월 13일 북한 경비정의 잇단 남방한계선(NLL) 침범 등의 이상 징후를 (1)연례적인 전투검열 (2) 월드컵과 국회의원 재, 보선과 관계한 긴장 고조 의도 (3) 우리 해군 작전활동 탐지 목적으로 분석 보고했다고 한다. 군 수뇌부, 정보처리 원칙 무시 의혹 증폭 여기까지의 경위를 종합하면, 그런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김 전 장관의 말은 일단 거짓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김장관의 삭제 지시가 없었다는 정준장의 증언도 설득력을 잃고 위증일 개연성이 짙다. 이장관의 증언에 따르면, 아마도 김 전 장관의 “질책”으로 합참에서 정보보고를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감청부대가 제시한 (2) (3)번 가능성이 삭제되고 “단순침범”으로 축소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정보부서간의 판단의 차이로 빚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상정하고 최악의 정보 상황을 가장 중시해야 하는 정보 처리 원칙을 무시했다는 잘못은 김 전 장관도 정(丁)실장도 변명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청부대 소속으로 합참 정보본부에 파견돼 있는 한 대령이 6일 “지난 6월 14일 합참 정보융합실장이 나를 불러 김장관의 삭제 지시 명령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경위서를 공개한 것이다. 이는 군 수뇌부가 국정감사에서 위증을 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아가서 북한의 서해 도발 경고를 국방장관이 묵살했다고 증언한 감청부대장은 7일 또 다른 사실을 폭로했다. 지난 6월 29일 서해교전 직전인 27일에도 북한의 도발이 임박했음을 확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북한군 지휘부의 중요한 교신 내용을 감청해 보고했으나 김동신 당시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가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증언과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태는 충격적이고 심각하다. 군 수뇌부의 그릇된 판단과 안일한 대처로 수많은 장병의 생명과 우리 함정을 잃은 서해해전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했으며 사기를 먹고 사는 군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이다. 정치적 분위기 편승 국방 임무 방기 안돼 국가의 보위와 국민의 안녕을 책임진 국방의 책임자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햇볕정책의 정치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국방에 허점을 자초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남북의 정치적 접근과 화해의 추구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세계 제5위의 무서운 북한의 군사력과 맞서고 있는 군의 대비와 경계는 결코 늦출 수 없는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국민이 군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그 같은 북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는 어려운 임무에 충실해 주기를 바라서이다. 국민은 군이 정치권의 눈치 보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방이라는 본연의 사명에 충실, 빈틈없는 경계 테세를 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군내부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는 갈등과 불협화음은 심상찮다. 수뇌부가 부하에게 잘못의 책임을 전가하고 하급자가 위를 고발하는 참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군의 생명인 지휘체계와 위계질서가 불신과 불만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군통수권 자체의 위기로 직결되는 문제이다. 군이 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개탄스럽다. 하루 속히 사태의 진상을 규명, 군이 신뢰와 책임을 되찾아야 한다. 국방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7일 특별조사단을 구성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국감장에서 단순히 블랙북을 들어보였다고 해서 감청부대장을 ‘군사기밀 누설’과 관련 직위해제한 국방당국의 이번 조사가 문제의 본질을 공정히 파헤칠 수 있을지 의심된다. 정권을 떠나서 군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번 조사가 서둘러 의혹 덮기 식으로 돼서는 안 될 것이다. 한영탁 (시민회의 바른 언론 포럼 회장) 출처 - 내일신문 2002. 10. 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