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인지 이제 알았다고? - 윤창현
	2006-10-24
불황인지 이제 알았다고?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드디어 ‘사실상 불황’임을 인정했다. 이 말을 들은 대다수 국민들은 아마 “이제야 그걸 알았느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경제운용을 총괄하는 정부 경제팀장의 경제상황 인식치고는 너무 한가했다. 그동안 정부는 경제가 괜찮고, 따라서 “인위적 경기부양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사실 정부가 써온 ‘인위적 경기부양’이란 말은 그 자체에서 인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경기부양은 경기하강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사람(人)이 무언가 역할을 하겠다는(爲)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경기부양은 당연히 인위적 측면이 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경기부양 앞에 일부러 ‘인위적’이라는 부정적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그야말로 ‘인위적으로’ 경기부양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최근 경기가 내리막을 걷고 북한 핵 문제까지 터지면서 급속도로 냉각되는 조짐을 보이자 이대로는 선거를 치르기 힘들다는 인식이 여권 내에 확산되면서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권 부총리의 ‘사실상 불황’ 발언은 그 연장선 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말은 꺼내 놓았지만 수단은 마땅치 않다. 대기업 정책 때문에 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는 안 되고, 균형발전 때문에 수도권 규제는 못 풀며, 서슬이 시퍼런 부동산정책 때문에 건설경기 부양은 어렵다. 정부 스스로 정책수단들을 제약하고 있다. 그렇게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남는 것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매번 등장하는 재정의 조기집행이다. 그러나 쓸 돈은 어차피 정해진 마당에 인위적으로 앞당겨 돈을 쓰는 정책의 효과는 당장은 반짝 하겠지만 일시적일 것이다. 경제학에 ‘구축(驅逐)효과’ 이론이란 것이 있는데, 이 이론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부작용을 잘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는 만큼 민간의 영역은 위축된다는 것이다. 사실 꼭 정부가 나서서 돈을 풀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정부는 정책의 조정자로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민간투자를 촉진하고 활성화하도록 도와주는 서포터스(응원단)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보면 5·31 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이 당의장까지 직접 나서 내세운 ‘뉴딜’이라는 이름의 구상은 방향이 좋았다. 수도권 규제 완화, 출총제 폐지 등의 정책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만 위하는 정책은 써도 대기업을 위한 정책은 쓸 수 없다면서 뉴딜은 실종되었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富)의 미래’에서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데 관료제도와 규제기관은 시속 25마일, 그리고 정치제도는 시속 3마일로 달린다고 질타를 한 바 있다. 정부가 기업을 따라잡으려면 지금보다 네 배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보다는 빠른 것 같다. 일본은 근래에 일본판(版) 수도권 집중억제 제도를 폐지하였다. 글로벌시대에 기업이 세계를 대상으로 입지(立地)선택을 하는데 국내에서 지역제한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판 출총제도 폐지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역시 가장 좋은 것은 돈을 쌓아 놓고 투자를 꺼리는 주체들을 어떻게 투자의 장으로 이끌어낼까를 연구하는 것이다. 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결단만 남아 있는 것이다. 조만간 대선(大選) 국면에 접어들면 현 경제팀이 커다란 작품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정권 말기라는 인식을 갖고, 정부가 나서 경기에 불을 때기보다는 민간의 힘을 빌리겠다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바른금융포럼 이사장) 출처 - 조선일보 2006. 10. 2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