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성적 공개’ 판결과 교육경쟁력 - 김민호
	2006-09-13
‘수능성적 공개’ 판결과 교육경쟁력 연구 목적을 위해서라면 개인 식별 자료를 제외한 대입 수학능력시험 결과의 원자료를 공개하라는 서울행정법원의 최근 판결을 두고 이런 저런 말이 많다. 수능성적 원자료가 공개되면 고등학교의 서열화를 막을 수 없고, 학교 현장에서는 입시교육의 과열을 초래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고교평준화 정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어떤 이는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이 우리 사회에 온갖 불행을 가져올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려와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고교평준화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번 판결이 평준화 정책의 존립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반면 수능성적이 공개돼 학교들 간의 경쟁이 활발해지면 학교와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될 것이고, 지방자치단체도 교육환경 개선을 매우 중요한 정책적 과제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처럼 긍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고교평준화 정책이 우리 사회의 공교육을 무력하게 만든 근본적 원인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은 고교평준화 정책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아니다. 판결의 핵심적 쟁점은 행정정보의 공개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알다시피 행정정보 공개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알권리를 위해 인정되는 제도다. 따라서 국민이 행정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면 행정기관은 이를 공개해야 한다. 다만, 국익 관련 정보, 공익 관련 정보, 사생활 보호 정보 등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행정정보는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나, 국익·공익 또는 사생활의 보호가 국민의 알권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평가될 때 비공개가 가능한 것이다. 법원은 판결에서 “정보의 공개에 따른 부작용은 비공개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수능성적에 대한 알권리보다 고교서열화 우려라는 사회적 부작용이 더 크게 보호되는 가치가 아닌 이상 이번 판결을 비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고교평준화 정책이 대한민국의 국익과 공익을 위한 절대적 가치인가. 이미 서울의 강남과 강북간, 그리고 서울과 지방간의 학력 차이가 공공연한 사실로 인식되고 있는 이때 마치 이것이 밝혀져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기밀인 것처럼 야단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一手遮天) 게 아닌지 모르겠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알 것은 알아야 한다”는 사실에 무게를 둔 것 같다. 다들 알고 있는 차이를 아무런 차이도 없다면서 대학입시에서 고교등급제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대학을 규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학생을 모집하는 단계에서부터 왜곡된 정보에 의존해 학생을 선발하는 시스템에서 우리나라 대학이 어떻게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할 수 있겠는가. 자율화와 규제 완화를 사회정책의 기조로 삼았던 역대 정부들이 유독 교육의 문제만큼은 규제 일변도로 나아간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물론 고교평준화가 폐지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평준화의 폐지와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 노출된 상태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이를 감추고 누르기만 한다면 용수철은 더욱 크게 튀어오를 수 있다. 이번 행정법원 판결로 인해 일시적인 혼란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차제에 알 것은 알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미래 성장동력인 우리 자녀들이 보다 양질의 공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정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김민호 (성균관대 교수·법학 / 바른사회 바른법제사법센터 소장) 출처 - 문화일보 2006. 9. 13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