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아태총회와 양질의 일자리 - 김태기
	2006-08-31
ILO 아태총회와 양질의 일자리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총회가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한국보다 훨씬 자본주의화됐다고 평가받는 중국, 풍부한 인적 자산에 끌려 세계 각국의 자본이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는 인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그동안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회복한 일본 등 40여개국의 노사정 대표들이 참석하여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방안 등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 행사는 지난해 10월 개최하기로 했었는데 양대 노총이 비정규직법안 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개최 시기가 올해로 연기됐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신이 손상되기도 했다. 어제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둘러싸고 노·정이 갈등을 벌이다가 한국노총이 철수하는 망신스러운 일마저 벌어졌다. 노동 문제와 관련된 국제행사에 참석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어떻게 해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했는가” 하는 부러움 깔린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안 “한국은 왜 노사분쟁이 그렇게 극렬한가” 하는 우려 섞인 질문을 주로 받고 있다. 정부는 세계 각국의 고용정책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으면서도 정작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노사정대화를 앞세우면서도 파업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실업률이 3%를 약간 웃돌고 취업자 수도 증가 추세를 보여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한국은 심한 내상에 시달리고 있다. 일자리가 증가해봐야 저소득 취업자만 늘어나고 있고, 반면 양질의 일자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만 보더라도 양질의 일자리는 27만개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고학력 청년실업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은 현재 청년실업 때문에 최저 3조6000억원에서 최고 30조원의 소득을 상실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이 일자리 문제로 고생하는 이유는 세 가지 모순에 있다. 우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으면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역은 기업이지만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 정책 등을 내세우면서 마치 정부가 개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 한국에서 기업은 정부의 규제 대상이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이 출자총액제한 규제부터 수도권 공장 규제에 이르기까지 각종 규제 때문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또, 먹고사는 문제를 법이나 행정력 등에 의존해서 해결하겠다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섣부른 법이나 재정지원 및 규제에 의존하다보니 일자리 문제는 오히려 악화됐다. 90년대 말 실업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부는 앞장서서 민간에 인턴제 등의 도입을 권유하는 등 비정규직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문제가 쟁점화하자 정부는 이것을 차별 문제로 규정하고 법으로 단속하겠다고 한다. 시장원리와 동떨어진 정부의 개입은 실효성이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양질의 일자리는 줄였고 편법적인 고용관행만을 키웠으며 노사분쟁을 비정규직에 확산시켰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를 위한 노동운동이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자초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양질의 일자리가 모여 있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잘나가는 기업에 조직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인건비가 올라가고 노사관계가 항상 불안하다보니 잘나가는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여왔다. 또한 기업이 생산성 향상이나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면 노동조합은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음모라고 반발하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국내외 시장에서 중국 등에 밀리는 기업이나 경영이 부실한 기업이 늘어난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모순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기회로 이번 ILO총회를 활용한다면 총회를 개최하는 데 들였던 어려움도 값진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8. 3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