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본 한국의 과제 - 류동길
	2002-10-04
통계로 본 한국의 과제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변화를 거듭했다. 부정적인 변화도 많이 나타났다. 그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선진사회가 되려면 지금까지 넘어온 작은 언덕이 아니라 더 높고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한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역협회가 발표한 ‘202개 경제·무역·사회지표로 본 대한민국’이라는 자료는 이 물음에 어느 정도 답을 하고 있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임을 보여주는 지표에는 가슴이 트이지만 사(私)교육비 세계 1위, 이혼율 급등, 에너지 다(多)소비국이라는 지표에는 가슴이 답답하다. 인구 1000명당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수(136.5명)와 이용자수(511명)는 각각 세계 1위와 3위로 한국이 정보기술 강국임을 보여준다. D램 반도체 매출액과 초박막 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생산과 휴대전화 수출 등이 1위를 차지했다. 대단한 일이지만 진짜 정보기술 강국이 되려면 이런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갈 길은 멀다. 언제 또 어디서 어떤 바람이 불어올지 아무도 모른다. 사교육비 비중은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 나라의 지나치게 높은 교육열은 ‘남은 나보다 앞서서는 안 되고, 나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모순된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은 나보다 앞서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평준화 제도를 유지하면서, ‘남보다 앞서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뜨거운 영어교육 열기에도 불구하고 토플점수는 155개국 중 119위에 머무르고 있다. 교육문제 해결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진짜 문제는 그러한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조직적이고 획기적인 시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혼 급증은 우리 사회의 또다른 어두운 면이다. 이혼율은 인구 1000명당 2.8쌍으로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 ‘이혼은 진보된 문명사회에서는 필수품이고 그 사회에 개인의 자유가 있고 경제가 안정되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몽테스키외는 말한 바 있지만, 과연 그럴까. 이혼은 사회 발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가정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원유 수입 3위, 석유 소비 7위, 전력 소비는 11위에 올랐다. 자원 빈국이면서도 에너지 다소비국의 모습이다.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효율의 증대는 자원파동이 날 때에만 외칠 과제가 아니다. 위스키 수입 4위국은 또 어떤가. 몇몇 고급 위스키는 아예 한국시장을 겨냥하고 생산한다고 하지 않은가. 선박수주 잔량과 선박건조량은 각각 1위와 2위, 국내총생산과 교역규모가 각각 1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반(反)덤핑 피소건수는 중국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수출을 적극적으로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지만 가격경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출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물가상승률 10위, 아파트 임대료 8위는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과제를 압축시켜 보여준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문제는 있게 마련이다. 문제가 많다는 게 문제일 수 없다. 상황이 변하면 문제는 늘 발생하게 돼 있고 그걸 풀어 가는 게 발전이기 때문이다. 선진사회로 발돋움하려면 한두 가지 과제의 해결로 되지 않는다. 국가적 과제를 폭넓게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라의 모습은 국민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 경제·사회·정치·문화는 국민이 엮어내는 오케스트라에 비유된다. 어느 한 부문이 잘되고 앞선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다.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명암(明暗)이 교차하는 건 당연하다. 더욱이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에서 온갖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좋은 나라 만들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최소한 20, 50년을 내다보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장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보완해 가는 사회는 발전의 길을 갔다. 각종 지표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교훈이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2. 10. 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