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정책이 피해야할 함정 - 김태기
	2006-08-14
정규직 전환정책이 피해야할 함정 정부와 여당은 약 2700억원을 투입해 공공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5만4000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비정규직문제를 차별의 문제로 규정짓고 법 제정이나 근로감독행정의 강화에 매달려 왔다. 심지어 비정규직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규정하면서 목소리를 높여 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도 기존 정책의 연장선에 서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세금을 투입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은 지금까지의 정책실패를 만회하려는 시도이거나 정부가 목을 매달고 있는 비정규직법안 처리를 위한 노동계 달래기의 전략적 포석으로 볼 수 있지만 시행단계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준이 직무의 성격보다는 근무기간에 의존하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를 놓고 비정규직 내부는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충돌하기 십상이다. 또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투입할 재원 조달 문제도 불투명하다. 정부 의도대로 지자체와 교육기관이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문제의 본질은 일자리 문제인데 이것을 외면하고 차별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의 문제로 접근하는 한 사회갈등만 커지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비정규직문제를 키운 임금 및 고용 관행의 문제점은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차별의 문제로 부풀리다 보면 해법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마치 병이 호전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진통제의 강도를 높여 내성만 키우거나 병세를 악화시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비정규직문제를 차별의 문제로 규정하면서 해법을 찾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일하는 데 남성과 여성의 차별, 인종이나 출신지역의 차별, 신체조건이나 연령의 차별은 금지할 수 있지만 고용형태 자체를 차별의 문제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이나 피부색 등은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결정되므로 그것을 이유로 일하는 데 불이익을 당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하고 동의한 고용형태의 문제를 차별이라고 한다면 모순이다. 임금 수준이 차이가 나고 근무조건이 차이가 나는 것을 차별이라고 한다면 차별이 없는 것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일자리가 갈수록 줄고 있고, 비정규직이라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특히 급여 수준이 중소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보다 많은 대기업의 비정규직이나 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이 그렇다. 반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대부분이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의 구분 자체가 별다른 의미가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소수의 대기업이나 공공기업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먼저 세워야 한다. 차별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자리 문제로 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성장에 주력하고 기업이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괜찮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경험이 풍부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0순위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 큰 줄기를 잡아 놓으면 임금은 기여도나 생산성에 연동해 결정되는 만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또 괜찮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세계일보 2006. 8. 1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