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규제 중독인가 - 조동근
	2006-08-10
참여정부는 규제 중독인가 인간은 인지능력의 한계로 ‘오류’를 범할 수 있으나, 오류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 오류는 쉽게 걸러진다. 옳다고 굳게 믿을수록 오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욱 위험한 것은 ‘무오류’의 확신에 ‘정의’를 덧씌우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개혁 독선’이 그렇다. 개혁 독선은 나는 옳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바람직한 규제로써 일그러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설계주의’를 신봉한다. 재벌규제를 통한 시장개혁, 평준화를 통한 기회균등, 과밀억제를 통한 균형발전 등이 그 사례이다. 참여정부 내내 경제성적표가 초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장과 경합해 온, 시장 위에 군림해 온 ‘큰 정부’가 시장의 복수를 부른 것이다. 최근 김근태 의장이 재계에 ‘뉴딜’을 제의했다. 정치권이 출자규제를 없애고 경영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강구할 테니 재계는 투자와 고용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가 흥정하듯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투자확대나 고용확대는 경기가 살아나고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면 정치권이 요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여권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뉴딜’을 비판하고 있다. ‘절차와 내용’을 문제삼고 있다. 절차적으로 당(黨)과 사전 논의가 불충분했고, 내용적으로는 재벌의 입장을 대변해줬다는 것이다. ‘정책 엇박자’는 출자규제 폐지에서 절정에 이른다. 김 의장의 출자규제 폐지 시사에, 당과 정부는 폐지 전 대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대안으로 거론되는 순환출자금지가 기업 입장에선 출자규제보다 기업의 경영자율을 크게 제약하는 악성 규제라는 것이다. 혹을 뗄 것을 기대한 기업은 더 큰 혹을 붙여야 할 판이다. 공정위 등 ‘규제론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의 계열사 간 출자가 지배주주의 자본 일부를 중복 계상토록 해 실체가 없는 ‘가공자본’이 만들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배주주가 실제 지분 이상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데서 비롯된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을 개혁하기 위해선, 순환출자분에 해당하는 만큼 의결권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출자는 자본이 부족했던 시대에 다양한 신(新)산업에 진출할 수 있게끔 한, 자본을 절약하는 ‘제도적 대체재’였다. 따라서 순환출자는 우리 고유의 기업성장 방식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한국을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끌어 올린 주역은 순환출자로 엮어진, 그래서 전근대적 소유지배구조를 떨쳐내지 못한 재벌이다. 순환출자는 전세계적으로도 관찰되는 일반적인 기업조직의 한 형태이다. 소유지배구조는 자본시장의 규율하에 투자자와 기업이 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설계할 대상이 아니다. 순환출자규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막대한 지분정리 비용과 경영전략상의 기회손실로 ‘완전 금지’는 불가능하다. 결국 출자규제와 같이 적용제외나 예외인정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 ‘누더기 규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피해는 경영권 방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점이다. 삼성전자 등 3개사의 내부지분율은 외국인 단일최대주주 지분율보다 작게 된다.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 내려면 규제완화가 ‘실질화’돼야 한다. 따라서 출자규제를 조건 없이 폐지해야 한다. 순환출자금지로 대체하려 한다면, 참여정부 스스로 규제에 중독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민간의 사(私)영역인 출자에의 관여를 개혁으로 치부하는 것은 독선이다. ‘개혁 대 개혁저지’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합리적인 시장주의 처방을 억압하는 한, 경제 선진화는 요원하다. 조동근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경제학 /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출처 - 조선일보 2006. 8. 1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