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의 조직화된 혼돈과 음모론 - 남주홍
	2006-07-18
국가안보의 조직화된 혼돈과 음모론 ‘조직화된 혼돈(organized chaos)’이란 1950년대 미국의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썼던 표현으로, 구제불능의 정책혼란 상태를 가리킨다. 현재 우리 정부의 안보정책을 평하기에 이처럼 알맞은 용어가 없다. 대통령과 관료들의 무지와 무능 그리고 무책임이 아예 조직화된 느낌이다. 미사일 위기의 시작 때부터 자중지란을 보이더니 급기야 남북장관급회담을 북의 공갈협박 장으로 제공하는가 하면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도 소외당하다 막판에 참여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관리 부재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유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북한 미사일 개발 및 판매에 관한 모든 직간접 거래를 중단하도록 회원국들에 요구한 것은 북한에 심대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고는 있지만 이제 상황은 더 이상 북 지도부 뜻대로 관리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러시아가 처음으로 제재 의지를 공개 천명했고 미국과 일본은 이를 사실상 법적 구속력있는 보다 강력한 후속조치의 근거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최대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대북 정경분리책을 고수하고 각종 경협을 계속할 태세여서 제재효과는 미지수다. 5자회담도 이미 주도권을 미국과 일본이 쥐고 있고 그나마 한국을 중국과 북한 편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현 정부가 ‘중재’할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지금 노무현 리더십에 대한 불신은 여론 못지않게 국제사회에서도 깊고 폭 넓게 퍼져 있다. 이른바 ‘코리안 리스크(Korean Risk)’에 노무현 정권의 예측 불허성이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는 정말 국가적 수치이고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자주국방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국방중기계획을 세우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받겠다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동맹관계 발전 청사진이 수반돼야 한다. 즉 미·일동맹이나 미·독동맹처럼 자주와 자립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더 긴밀하게 통합돼 가는 동맹 구도를 제시해야 안보의 내실화를 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정반대로 동맹을 사실상 깨는 홀로서기식 ‘자주군대’를 지향하고 있다. 작전권 조기환수로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고 미군 역할을 축소시켜 전시 미 증원군 투입의 길을 막아놓는가 하면, 주적(主敵)이 느닷없이 북한에서 일본으로 바뀌고, 안보 위협의 근원을 북핵과 미사일이 아닌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서 먼저 찾는, 그야말로 자해적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음모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군사적으로도 국방중기계획만으로 작전권 단독 행사를 자신하기엔 현재로선 너무 위험하다. 군사력 건설에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도대체 당장 무슨 능력으로 계속되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공갈을 억제할 것이며, 북 급변사태 같은 유사시 ‘통일전쟁’을 어떻게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권 말기에 무슨 시간표에 쫓기듯이 국가안보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작업을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굳이 버웰 벨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제기한 의문을 들지 않더라도 이 정권이 추구하는 안보의 실체와 통일의 정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노 대통령은 북핵 옹호 발언과 미사일 침묵, 북방한계선(NLL) 협상 용의와 국가보안법 폐지 의지 등 대북 제도적 양보 표명, 그리고 한미연합사 해체 구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국가안보 시스템을 좌편향적으로 혁파해 왔다. 북한의 눈치만 보는 통일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도하게 만든 황당한 조치도 그 일환이다. 일찍이 김일성은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그리고 걸프전 충격 속에서 대남전략을 직접공략에서 간접공작으로 바꿔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것이 바로 6·25식이 아닌 6·15식 통일전선전략이고 지금 남북 양측 지도부가 합창하는 ‘우리민족끼리’ 구호다. 역사의 흐름이 과연 어느 편에 있는지 결국 내년 대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국제정치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7. 1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