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인터뷰를 검증한다:노무현 - 김일영
	2002-10-01
[대선후보 인터뷰를 검증한다] 노무현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다 못 믿을 게 여론이다. 한 때 40%를 상회하던 노무현(盧武鉉)후보에 대한 지지가 어느새 10%대로까지 곤두박질 했으니 말이다.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특정 세대와 지역에서도 그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이렇게 민심을 요동치게 만들었을까. '변화'에 대한 열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盧후보를 정치인들 중 하나에서 일약 차기의 대안으로 끌어올린 것은 그가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 정치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돌보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역주의에 도전해 왔다. 이런 그의 파격적 정치행보가 오랜 3金 정치에 지친 국민들에게 신선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盧후보를 유력한 차기주자에서 후보들 중 하나로까지 다시 격하시킨 것도 역시 국민들의 변화 열망이다. 후보가 된 후 그는 이러한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 개혁과 안주 사이에서 어정쩡한 모습만을 보였다. 특히 부패의 늪에 빠진 김대중 정권에 대해 명확한 태도 표명을 유보함으로써 그는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노출했다. 변화를 부르짖고 올라온 그에게서 포스트 3金 시대의 비전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지지자들은 당혹스러워했고 급속히 떨어져 나갔다. 그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고, 마침내 후보 교체론까지 등장했다. 정치개혁 해법 흐지부지 이러한 자신의 실책을 인식했는지 최근 들어 盧후보는 보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그런 노력의 일단(一端)이 엿보였다. 특히 대북정책과 경제 문제에서 그는 여타 후보와 차별되는 진보적 성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여타 부문에서 그의 입장은 여전히 애매하거나 교과서적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총론만 있고 각론적 실천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盧후보는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시대정신으로 내세웠다. 정확한 현실인식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 그는 정치개혁의 방안으로 돈 적게 쓰는 정치와 민주당 개혁을 말했다. 그러나 어떻게 돈을 적게 쓰면서 선거를 치를지에 대해 그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친노파.구당파.탈당파 등으로 나뉘어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민주당을 어떻게 자신의 색깔로 개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입을 다물고 있다. 국민통합의 방안으로 공공부문 충원시 지역할당제를 하겠다고 했으나 이 역시 기존에 나온 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이렇게 총론의 정치만 할 것인가. 총론의 정치는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점에서 구호의 정치이고,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아메바(amoeba) 정치다. 이제 盧후보도 각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 盧후보는 하루 빨리 민주당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盧후보에게 민주당은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부담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당내에서 이념과 노선을 달리하는 세력을 떨어뜨려 내자니 소수파 인디언 부족의 추장으로 추락할 것 같고, 함께 가자니 부족의 혈통이 혼란스러워져 정체성을 의심받게 된다는 데에 盧후보의 고민이 있다. 그러나 盧후보의 지지자들은 바로 이 점에서 그의 분명한 정체성과 비전을 보고 싶어한다. 그들이 볼 때 盧후보의 역할은 반드시 단기적으로 대통령선거에서 이기는 데에만 있지 않다. 정체성과 비전 분명해야 해방 이후의 한국 정치사에서 대중성과 진보성을 겸한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점에서 盧후보는 흔치 않은 정치인 중 하나다. 따라서 盧후보의 지지자들은 그가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도 마음을 두고 있다. 盧후보는 한국의 정치 지형을 어떻게 개편해 나가는 것이 한국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를 고려해 행동하는 것도 자신의 역할이요, 소명임을 자각하기 바란다. 이번 인터뷰에서 盧후보는 바로 이런 점에 관한 자신의 결단과 비전을 단호하고 구체적으로 밝혔어야 했다. 남은 기간에 이에 관한 분발을 기대해 본다. 金一榮 (성균관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9.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