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심판에서 교훈 얻지 못한 청와대 - 조동근
	2006-06-02
5·31심판에서 교훈 얻지 못한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은 5·31 지방선거 결과와 관련, 1일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선거 결과를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겠다”며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과제를 충실히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짧은 메시지에 자신의 의중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조어(造語)의 마술사답게 노 대통령이 사용한 ‘민심의 흐름’에는 복선(伏線)이 깔려 있다. 민심은 말 그대로 ‘국민의 생각’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와대가 선거 결과를 수용하려는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의 생각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하면 족하다. 그러나 그럴 의사는 처음부터 없어 보인다. 대신 민심에 ‘흐름’을 붙임으로써, 민심의 의미를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 위정자가 떠받들어야 할 천심(天心)으로서의 민심이 아닌,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사회심리로 민심이 굴절된 것이다. 선거 결과를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여당의 참패는 ‘상황이 빚은 결과’일 뿐이라는 자의적 해석도 가능하게 한다. 이 같은 추론은 선거 정국 이후에도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하겠다는 언명(言明)에 의해 뒷받침된다. ‘무오류’에 대한 잘못된 확신은 정책의 교정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유감스럽게도 현 정권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다. 여권은 선거 오래 전부터, 지방선거를 ‘정권심판’으로 보는 시각에 일정한 선을 그어 왔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여권이 환골탈태하려면 이번 선거 결과를 준엄한 ‘국정평가’로 받아들여, 참여정부 출범 이래 추진해 온 각종 정책의 적폐(積弊)를 과감히 떨쳐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확신해 왔던 정책 사고를 되짚어보고 필요하면 궤도 수정과 방향 전환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위민(爲民)의 길인 것이다. 민심이 현 정권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참여정부 들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를 통한 분열과 증오 정치도 민심을 떠나게 한 추가적 요인이었다. 예컨대 80 대 20의 승자 독식의 ‘카지노 경제’의 문제를 청와대가 제기했다고 하면, 외국인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은 양극화론은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는 야당의 메뉴이기 때문이다. 양극화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청와대가 양극화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정치적 역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세금폭탄 아직 멀었다”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자” 등의 반(反)시장적 발언도 도무지 청와대가 진원지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부동산 거품 붕괴 경고는 한 술 더 뜨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가 지방에서는 이미 집값 버블이 붕괴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 붕괴가 걱정된다는 것인지, 부동산 죽이는 정책이 드디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저금리, 무리한 국토 균형 개발, 거액의 토지 보상, 거래 촉진에 역행하는 부동산 과세 등으로 버블이 더 커진 것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가 버블 형성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버블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주무 장관이 남의 이야기하듯 버블 붕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라 칭하면서까지 한미 FTA를 역설했지만 FTA 협상을 위한 우호적 여론 조성에는 소극적이다. 효율을 해치는 제도, 시장을 거스르는 정책은 과감히 수정돼야 한다. 국가에 대한 개인의 의존이 심해지는 사회는 활력을 가질 수 없다. 평등주의에 경도된 정책으로 국민적 지지 획득에 실패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심판으로부터도 교훈을 얻을 수 없는 정권이 되고 만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바른사회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출처 - 문화일보 2006. 6.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