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家범죄 - 송복
	2002-09-24
國家범죄 국가는 기본적으로 도덕기구다. 국가가 도덕기구인 것은 국민의 삶을 안전하게 이끌기 위해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도덕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국가는 이 도덕성으로 해서 삶의 위협이 되는 범죄를 예방하고, 이미 일어난 범죄를 강력히 응징한다. 그 국가가 앞장서서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의 삶에 간단없이 위해(危害)를 가하는 국가범죄를 거리낌없이 자행한다면 그 국가의 임무는 무엇인가? 더구나 그 국가범죄로부터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보고도 그 국가범죄에 대해 침묵일관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 침묵국가는 왜 또 존재하는가?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직접적인 자국민 보호를 내팽개친 그 국가의 기능은 도대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국민은 국가에 충성하는가? 이번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북한방문은 새삼스레 우리로 하여금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를 되묻게 한다. 그의 북한방문을 계기로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현 정권의 지난 4년 반여의 행적을 또 다른 관점에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일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하고 사죄한 것은 북한이 국가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명백히 인정하고 확인한 것이다. 그것도 ‘대남(對南)공작을 위해 일본인을 납치했다’고 한 것은 한·일 양국에 대한 이중의 국가범죄를 역시 자인한 것이 된다. 이 국가범죄에 대한 우리와 일본의 의지와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일본은 단도직입적으로 수교협상 재개의 우선 조건으로 납치문제를 내세워 북한을 압박했다. 일본 국민의 여론도 그런 테러국가와 수교할 수 있느냐의 근본문제를 제기했고, 더 근본적으로는 국가 존재이유를 캐묻는 국가 도덕성의 문제까지 소급했다. “국민 납치를 수십년간 방치해둔 국가도 국가라 할 수 있느냐”의 질타와 절규가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 어떤 회담에서도 납북자며 국군포로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일이 없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자행된 그간의 국가범죄에 대해 북측의 사과는커녕 언필칭 북한이 늘상 해오는 ‘남측 당국의 정치적 모략’이라는 역선전만 되풀이해 들어 왔다. 이런 국가범죄로부터 우리가 겪은 경험과 고통은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음에도 거꾸로 일본은 우리를 반면교사로 해서 철저히 국가는 도덕기구라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일본정부는 국가의 기본 임무가 무엇이라는 것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선진이었다. 성과를 내세워 허장성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진이고, 국가 최고 책임자의 방문에서 보는 의전에서도, 외교적 수사에서도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는 점에서 선진이었다. 그 선진과 후진의 확연한 차이를 북한이 이용한 것인가?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서 북측은 한·일 양국에 대해 전혀 다른 이중의 잣대를 갖다 댔다. 일본엔 몇 사람을 납치하고도 사죄하고, 우리는 수천명을 납치하고도 미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 그 이중성의 잣대. 이 이중성이야말로 북측 기준에서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일본은 국가범죄를 절대 용납 못하고, 남한은 그 국가범죄에 대한 의식도 응징의 의지도 없는 그 차이만큼 북은 이중잣대를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그 같은 국가범죄, 그 같은 이중성 기준을 보면서도 오히려 민족은 하나라고 노래부르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치면서, 그 국가범죄에 면죄부를 주지 않았는가? 그 국가범죄를 말하기만 해도 냉전적 사고니 반통일 세력이니 반민족적 행태라고 매도하기만 하지 않았던가? 현 정권은 우리가 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지 그 기본목적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북측의 국가범죄를 말하면 ‘남북관계가 훼손된다’는 현 정권의 사고와 정책은 국가 공통적인 기본 목적에 비춰 보면 주객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 본말이 전도된 현 정권의 ‘사고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북한의 국가범죄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악의 축’ ‘불량국가’의 레테르에서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송복 (연세대 정치사회학 명예교수/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02. 9. 24 아침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