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방화' 부른 사회불안심리 - 이훈구
	2006-05-04
‘묻지마 방화’ 부른 사회불안심리 최근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방화가 연거푸 발생해 온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른바 ‘묻지마 방화’ 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산림자원을 겨냥한 것이어서 국민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 화성의 서장대, 한국의 대표적 궁궐인 창경궁의 문정전, 수려한 북한산 산림 8000여평이 화마에 휩싸였다. 그래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우울해하고 있다 방화란 아주 무책임하고 어처구니없는 범죄이다. 왜냐하면, 방화범이 불을 내서 얻는 개인적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범죄는 그 대상이 있기 마련이고 금전적·심리적 이득을 얻기 위해 자행된다. 그러나 방화범은 목적도 없이 화풀이 식으로 불을 지른다. 인적이 드문 장소, 어둠 속에서 저지르므로 잘 붙잡히지도 않는다. 그래서 방화범은 맛이 들려 연속적으로 불을 지른다. 방화범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유형은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다. 이 불만형이 사업에 실패하거나 빚을 지면 그 앙갚음으로 방화한다. 서장대를 불태운 범인은 “카드빚 3억원 때문에 속이 상해 불을 질렀다” 고 자백했다. 둘째 유형은 정신과적 문제, 특히 성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방화범은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낀다. 셋째 유형은 반달리즘(파괴주의)이다. 공연히 공공장소를 더럽히고 기물을 파괴하는 반달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방화도 일삼는다. 또 하나의 유형은 종교적·인종적 편견을 가진 사람들로서, 이들은 외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방화를 한다. 1990년대 미국 남부에서 흑인교회 방화사건이 수 백 건 발생했는데, 이는 흑인을 증오하는 백인우월집단의 소행이었다. 한국에서도 고색 창연한 사찰이 타교 광신도에 의해 불탄 사례가 여러 건 있다. 방화는 개인심리적 원인으로 저질러지기도 하지만 사회불안과도 깊은 연계가 있다. 사회가 안정되고 먹고 살기가 족하면 방화사건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에 방화로 인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 전부터다. 강원도 산불이 대표적이다. 미국 옐로스톤의 방화도 10여년 전 미국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할 때 일어났다. 개인의 스트레스가 일면 경제 및 사회불안에 기인하므로 방화와 사회불안이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화를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사람, 특히 반달리즘 성향을 가진 청년들을 잘 감시하고 이들의 정신과적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실직자, 사업실패자, 가정파탄자 그리고 학업을 포기한 청소년을 잘 보호하고 치료해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산림과 문화재 감시원을 늘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문화유산이 많다. 그런데 이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의 수는 턱없이 모자란다. 미국의 경우 국립공원마다 산림감시소가 있고 감시원이 수시로 순찰한다. 문화재도 이런 식으로 보호한다. 미국에서 자유의 종을 이중삼중으로 철저히 보호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출입자는 모든 소지품을 검사받고 신분도 확인 받는다. 정부는 많은 예산을 문화재 감시, 산림감시에 할애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자랑인 금수강산, 문화유산을 확실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위의 방법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스트레스를 자신이 아닌 외부에 탓을 돌리는 비뚤어진 사회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모두 앞장서서 ‘남의 탓’ 이 아닌 ‘내 탓’ 이라는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 이것이 방화를 없애는 근본적인 대책이다. 이훈구 (전 연세대 교수·심리학 / 바른사회 바른복지운동본부장) 출처 - 문화일보 2006. 5. 4 포럼